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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_ 경성방송국 단파방송 해외연락사건과성기석

  • 저11 장 “短波放送.件을 再照明한다.” 放送'l!li!ff\:家-兪 炳 뚫

    껴;'11’E 여러분을 모시고 제가 여러분보다 아는게 꺼lj로 없는데 이렇게 높은 자

    리에서 말씀을드리게 된 것을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v.v~JJY.送’Ji:件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J ;:件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

    려움에서 제 나름대로 熱心히 I ;λ했습니다.

    값判 紀錄 lτ에 나와 있는 分|”l한 ‘j;:따도 있고, 자 l까를 치르고도 센ff.해 계

    시는여섯분의 생생한 펴 , r도앞으로 있을것이기에 잊’꾀싹이 있다고생각하

    는것을추려서 말씀드릴까합니다-

    M\判을 비롯한 이 ‘M'Iτ어l |「〔按「애인 |}에係로 '\l. 찌·히-는 人物이 55-11, 이나 되

    고 |{;]않「에으로 빼If~이 있는 분이 서너분을 합쳐 원」 60-1'1 의 Al派이 £팍論되어

    야 하며, 제가 {따究한 아이 템을 추려 보아도 앙‘J 80 아이 템이내 되어 tflli때이

    주어진 ”,')'11\J엔 제대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1ttr~i'입니다. ‘강및1 1 i에 따라 人版을

    떠나서 ·F件|리뿜만을 말씀드리겠으니 I값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F폐發싸를 하게 된 것은 낀波li'x.i견 ’Jf 1'1τ으로 光렌)JX.i깐A이 11

    썩에 檢짧됨에 따라 friki l이 생겼고 또한 그러했기에 뒤처리를 해야 할 位l한

    에 놓이게 되고 -||.나口} ‘'¥~~에 불려기- l’l

    둥의 *〈섣!않,淡에 따른 자파l짜쉰 ‘J;꺼; |셔찌을 어느 깐l파 쉬잉생했에 기-끼-운 느낌으로

    서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또한 1 1 ,m에 抗『힌- L( o~패꾀의 -J싫으로 ‘Jf件化

    된 것이 |||; | ;에 알려져야만 된다는 一念에서 꾸준히 {따究했기 때문이라고 생

    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딸씀드리는 삼히 펴j따를 먼저 >.!

  • 는 4시피l싸 111111이라는 없'i입니다. IJY.送 '.}-'.를 flf'1E하는 敎찮넘들에게 그리고 後덴

    들에게 하나의 앞으로의 써폐를드린다는뜻에서 ,il&피것 ’JI.fl;을토.대로 띨-씀

    드리고자함니다‘

    11 폐· f의 }j)(_낀!ff잉는 1927《r부터 19451i-:까지 4、:~ 18 1 1 '-/llJ이었으며 ti]

    t!Ji.ljl,(f강’J1f1!;은 1811 :1j1 3分ι1인 611'1”l에 걸쳐 댔' I = 한 lπ人한 ‘]!.{'!;입니다

    t\i VJl. IJY.5.강 ’Ji 「| ;에 웹헤 쩌r ,;,~

    몇 분이 샤 l’•'i플 치르시고 씨%힌- 분이 여섯 분이나 되었다고 소개되고 있어

    아시는 분이 많으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꽤1’1:i파씨ι에도- i씨')f }j){_쉰

    ’J!('j:이 나와 있습니 다.

    ’J!.h이 1f( 人힌- ‘JI. 「|τ임을 1’(,,안하는 것으로 값判所, 檢했과 ??컸의 ,;},서까 젠

    에 ri니 ·I~된 人物만 앞서 말씀드린비-와 같이 60:f,이나 되었고, 101;라고 ri忍ii값

    되어 j미을 받은 붙. Ill~과값判에 fJ

  • 첫째 理다1로 JODK는 | | 人의 計꾀에 (Ji한 것이지만 r파|낸 lltW.r띤]인 無線

    技術쉬로 國內씨‘에 알려진 폐빡의 마르코니라고 까지 불리웠던 !댐德奉U;와

    放送깜I맨l司制I포 를 6.25 收ru後 강lj設한 l쉽,' }成U; 이 두 분에 依해서 JODK가

    퍼波를 發射할 수 있게 되었다는 ·Jt:따입니다. 「IA의 技術에 f:t;j J폈先-'J조 」1\:71- 金,!폐짧:Jt/I: =::: 1\:가 沈l퍼‘상光'[:_ lfLl1\:가 '}펌求先生이

    었습니다. 이분등은 文字그대로 E木이시었으며, 金웹했光*은 우리말 放送

    안에 ·:wm.r템誠맨를 썽y,많해 li!li강히 다 II 人에 依해 ~lll~[ilj로 ,, 1斷되 게 되자 節꿇

    를 딘지셨고, 沈|페’상課長은 우리 말 放送에 퍼Jlj되지 않는 II 木때%等 LJ *말

    을 쓸 것을 램핑펴하게 되어 이를 折紙하다 亦足 쩌f싸를 쓰고 !ix5강r,;;을 떠나

    셨다고 합니다. 씨1 \: f샘싸 l밴 l;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剛)fl(後 tl-ti정LJW속에서

    찌l장-단l4땅총샤건율찌죠명한다-유앵옹 ’

    229

  • JJ'xt갚을 제대로지켜 나갈수 있었겠습니까?

    컴퓨터라이즈된 꽤國放낀公社가 폐然히 생겨난 게 아니라 다로 1927년부

    터 어어져 내려 옹 하나의 써統위에 서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r1 찌· r i 91n,펴의 우리 Jlx.i응j」 ,, , 씨,쉰할 것은 우리밀- 」**갔l앉$을 펀 總/서

    l앉팎에 1x:mt를 들고 우-리말을 갈고 닦이- 왔으며 우리의 엔統X化 t.'f'히 낀.,,,

    하-樂의 人댔化와 R:I까퓨樂의 i파& 等은 빼놓을 수 없는 렁抗이며, 밍f,淡, 파잉

    ψ 의 방송은 l젖l패心을 불러 일으킨 바써로 그 까J끊는 젠iii띠|끼인 {따究많}띠인 것

    입니다.

    ||쉐; 18

  • lilG判듬디錄에 {*하면 1939年 2n 에 굉~~꼈 ;l퍼, *!힘;월 두 분이 接線하게 된 것으로되어 있습니다.

    1941年 i2n s 11 11 4:이 」次人때인 太 'I'·洋때암을 일으키게 됨에 따라

    文字 그대로 앓II져는 강수t에 가까운 빠黑|||;싸가 되고 만 것입니다.

    海外파絡을 맡아 옹 짜|힘펀先生, l共쩍.n퍼x. 1-1:::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제행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 이 러한 파행에 k난해 있을 때 短VJU.&送팎f牛

    의 UliE인 外퓨B1」」 WR과 放送l司內部iJ I版이 ;){II-싼된 것입니다

    Ji!x.送內部에서 判記할 人物이 있습니다. 비-로 쭈」德U;라는 분입니다. 李

    τ德¢는 美國 인디아나 州立太學을 쭈菜한 퍼 r웰徒로서 핏l쐐「n- f.\:↓캔을 갖

    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不幸히도 太'r洋i따땀의 {泡火가 터지기 rllI에

    서울에 계신 rJ親이 危첼하여 양(i탱하였다가 발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발이

    묶이 게 되 어 道JO![[없이 J;""\,[l減을 한 게 JODK이 었는데 美|꿇l太덴은 3忍定해 주지

    않고 지금으로 말하면 학력을 |힘等덴校만 11x뻐해 줌에 따라 하꽤r:u짧로 不平

    分 f이었습니다.

    JODK 펴페 演껏所 2J!헤 ill物에 }jj(_送 指f

  • 드문 이분은 그야말로 맴쟁이었습니다. }/.>(送機材 k벼修는 도맡아 히-신 분이지

    요. 그런데도 이 분 #κH;은 그야말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줬|얘써이었습

    니다- 손재주가 좋은 싸과錫)..(;가 川|페을 들었는데 그는 깎 ;앞J..\;로부터 l파|삽j

    아닌 ‘Ji-W을 듣고 어찌 Wt싸 }j'.,(_J강잊·f, i·機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끼-? 만

    들었습니다 정말 만든 것입니다.

    틀려 오는 소리는 젤퓨이 있었지만 •TC파에서 나오는 따II、'ff;:FH의 망송이

    었습니다. 그뿐입니까? l때뺀의 !'I폐111 호랑이가 어흥 짓는 소리와 더불어 나

    오는 뉴스와 뉴스 따,값 그리고 f까II~!'.\' |一기- If〔接 |쇠’랜으로 하는 “收|싸l의 同

    빠 여러분이 l/.>l5응을 닫고 서로 서로 꾀j하고 $11織을 하십시오. 우리의 JW!맹인

    獨 1'!:은 멀지 않았습니다 ” 싸送은 繼짧되었습니다 1PGWi£1C;는 피가 끓어 오

    름을 느낀 나머지 그 뿐의 #|끼 ~(J;.Ji:1센파)께 ‘Ji.1t대로 아뢰었습니다.

    시1.¥1)( Jjx ill을 들어도- 안되며 하물며 N파·:1: f, j機를 남몰래 갖고 있기만 해

    도 減짚行이니 패ii끄 아버지는 장작으로 때리는 척하면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야단을 치지 않았겠습니까?

    바로그런사람이 싼퍼사람인것입니다.

    J;.Ji:J,t.;$£J:℃의 父빠은 야단블 치기는커녕 “ 1f(앓 |짜11.'.ftl.30H 엔 어느 분이 계시

    다고 하더냐 ” “ )';ii패에서는?” “ J~따|에선 j채|{,값會라고 하면서 1'ill\1 1~이라고

    하는분의 ?*짜을들었습니다” 父싸은어떻게 된 것인지 ?Ct피해 하시띤서 빙

    그레 웃으시고는 “앞으로는 굉心하도록 해라. 왜놈들의 값뻐가 ~L:하다.” 이

    같은 말씀을 남기시고 횡하니 밖으로 나가시는게 이-니 겠습니까? 成 J,않MJ..\;도

    父젠의 뒤를 따랐습니다 父때의 .진;;,~t싸까 만난 분은 바로 ,lf1 ·Wi l~ |센 | ;이었

    습니다. f잦싼의 눈을 j단해 다니신다는 l따씨 I~ 맨 I:를 .fl!St힌- 父생은 더더욱

    힘이 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싸J샤까J.(;도 l짜l샀한 :7.Jc'.! :·M으로 혼자 移까를 해서 t\J.¥J~lk5강에 넋을 잃고

    …… …---- 171 갱생빵총국 단확앙흥 빼외연학샤건화 생기씩 232

  • 또잃기만하였습니다.

    바로 이 같은 狀況 F에서 2)퍼에 있는 쑤二셉.[\;와 地 ,,-,쉰에 있는 成基錫U;

    도 l씬:l'.「애인 까l逢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텔레파시라고 하는데 눈으로 만난

    두 사람은 정;쩌까l퍼을 |따感한 것입니다. 그 後 몇 날 몇 빔--을 지새웠을까요.

    그런데 i떨命의 作亂은 };,\(~錫JJ;가 光/‘|‘|로 팽펴l을 하게 되어 約 8ff~~ J1 을 만날

    憐쩍를 필久하고- 만 것입니다.

    11 A을 微江하게 排1주하는 |껴城에 J!x.送所를 l많l원하게 되어 "}_」德、U;가

    所l강으로 삼任하게 되었습니다.

    所長이 된 f二폈.[\;도 同{흉로서 成과錫U;를 指名하게 됩니다.

    싸꼈때.[\;와 '.~ 1힘펀.[\;는 파外~絡이 안되는 가운데 ,~'’'iil1、 끝에 JODK 어 린

    이시간 'M' lli} 지끔으로 말하면 PD인 싸濟펀U;와 않線이 된 것입니다.

    빠外파絡 ·Jr뿔은 JI띠써롭게 1 1J 1써되었습니다 |샤|체되어 몇 개월 일이 잘 되

    어 獨b'L한다기 보다 어떻게 우리 政씨가 다시 해 ''L되어야 하는 마당에 ---ι

    짧JJ;가 |껴城으로 떠났습니다. 츄따인 Dr~城에 i'J. I·펴援떤인 J;,li)끓錫.[\;가 I힘歸의

    都[0,J:也에 入城을 하게 됩 니 다.

    싸濟賢.[\;\의 발길은 서울에서 閒城으로 1共썼;l퍼.[\;와 짜 I힘;쉰先't님은 l채

    城에서 t펀進洞 R띄 f쩍識로 介it하였습니다.

    ~\lV>'liilc送’JI:件의 써人 1 1 1뻐이 f;心하여 L~族8.lffi끼을 !ffe: I써한 것입니다.

    L\;族述폐1은 起 스피드로 번져 나갔습니다

    번져 나가는 民族댄페j을 II 싼이 ~스때띤- 히-고 있을 돼가 l’피無합니 다. 檢짧

    旅風이 마치 회오리바람과 같이 일기 始{'I"하였습니다‘

    *곰*는 다음과 같습니다.

    찌l짱---확앵총싸건을셰죠.한다-유.흩 …· 233

  • • 短波放i용.件 빼빼 f훌훌;홉

    凡例 @ 朝蘇臨時保安法, @ 流言뚫語 流布罪l @% 陸海軍 메j;去, @ 無線電信;去

    횡死홈

    姓名 / 本籍 tB身校 職業 未決期間

    j共쫓쫓範 I I或南 훗콜롭비아大쭈 東亞日報記者 8個月

    景피§鉉 / 未詳 未詳 民聚훌훌院醫師 未詳

    李二德 / 平南 美인디(〕}나州立大 開城放送所長 9個月

    文錫俊 I I或南 東京高等師範 朝蘇日報經營局長 未詳

    金安郭 / 未詳 未詳 朝蘇放送協會 未詳

    姓휩未詳의 짧9E;者 1 名이 져lj途로 있음

    姓名/本籍 남j身校

    成基錫 / 京앓 京城電氣쩔校

    許 憲 / 未詳 未詳

    朴炯完 / 서울 未詳

    8 'i!C I 京훌훌 未詳

    嚴끽E模 / 서울 京城電氣뿔校

    楊;쩔賢 / 서울 延if,률專門

    宋進根 / 京훌훌 日本휩웹田大후

    高漢均 / 京앓 日本l明治大후

    金東河 / 平北 日本中野無線學敎

    孫正鳳 / 平北 日本확띔田大쭉

    崔用熙 / 末혐 未@¥

    黃文哲 I I或南 ;未神

    盧鉉重 / 未神 未피후

    j共鎭奭 / 京앓 ;未神

    ;共f훌鎬 / 未神 ;未神

    ............ [7) 경성방송국 단와방송 해외연헤건과 성기석

    234

    훨줍톨치르신문

    職業 未決期間

    放送人 9個月

    辯護士 未ff,$

    鐘路日本商會經營 8個月

    라디오商會經營 未神

    放送人 7個月

    放送人 未神

    放送人 7個月

    人흉團經營 未@¥

    放送A 未피¥

    放送A 未神

    民間人 未神

    民主日報記者 未神

    放送人 未@¥

    放送人 未@¥

    放送人 5個月

    升lj훌 適用法

    2년 @@@

    2년 @@$

    2년 OflfD

    1 년 @@·

    1 년 @

    Jflj훨 適用法

    2年 @@@

    2年 @@·

    1 年6月 @@@

    1 年6月 @@뭘

    1年2月 @@밍

    1年 @@@

    1 年 @@·

    1 年 @@@

    1年 @@·

    1 年 @@·

    1 年 @@·

    1 年 @@@·

    1 年 @@·

    1 年 @@·

    1 年 @@·

  • 凡例-‘R 朝蘇臨時保安法, @ 流言꿇語 流布罪, @ 陸海軍 升IJ;t:~ . 8 無線電信法-훨줌를치르신문

    姓名 / 本籍 出身校 職業 未決期間 메j量 適用法

    金南得 / 未神 未神 放送A 末피¥ 1年 @@$

    金健二 / 未神 未神 放送A 未피후 1年 080

    趙f宗國 / 京앓 !Ji材學校쭈 放送A 6個月 1年 080

    金鍾浩 / 뿐、南 未神 放送人 未따 1年 • 宋南惠 / 慶北 大邱師웰쭈 文學家 7個月 1年 @

    李昌得 / 京앓 日本中쭈 放送A 5個月 8月 @

    李根昌 / 未神 未神 放送人 2個月 8月 @@%@

    安薦洙 / 慶南 未神 朝解 / 東亞日報 10〔〕日 1CI 月 @

    朴龍信 / 京앓 京훌훌高等쭈, 放送人 8個月 6월 @

    ;去學專門쭈

    朴짧信 / 全南 京城電氣學校 放送人 5個月 6월 @

    宋龍雲 / 未神 未@¥ 放送人 7個月 6월 @

    朴()神 / 未神 末神 放送人 7個月 6월 @

    金貞雄 / 未따 未神 放送人 未피후 6월 @

    金弼柱 / 서울 未神平훌大成 平壞 放送A 7個月 6'월 @

    吳建泳 / 京훌훌 神學校 勝洞敎會堂會長 5個月 6;월 @@

    韓振東 /서울 京城電氣學校 放送A 80日 1 QI) 日 @

    陸鍾훌훌 / 뿐、北 漢學 農業 80日 훌;1金 @

    申相雲 / 서울 德홍흘商高후 放送A 5個月 흘;1金 @

    趙國煥 /서울 東京까E뿔中 放送人 7個月 未神 @

    朴斗夏 / 京앓 未神 松都高普學옮 未神 未神 • 李敎敎 / 京훌훌 日本大學經;쩔科 果樹園經뿔 未神 未~$ @

    金俊浩 / 京앓 未神 未神 未神 未神 @

    黃f흘淵 / 서울 未神 未神 未神 未~$ @

    白英體 / 未神 未神 未神 未神 末n @

    白寬洙 / 全北 日本明治大法大 前東亞日報社長 未피¥ 未피¥ @

    235

  • 凡例 _o 朝蘇臨時保安法, @ 流言輩語 流布罪, 훌 陸海軍 升’l法, e 無線電信法훨줌톨치르신문

    姓名/本籍 벼身校 職業 未決期間 升I]훌 適用法

    ¥쩌泰-/全南 未神 삼앙사 未詳 未詳 @

    l或尙劇/서울 未神 著述家 未詳 未詳 @

    李海鎭/서울 未神 未피후 未詳 未詳 @

    申昌福/未神 未神 理髮館主人 未詳 未詳 @

    韓永않/未神 未@¥ 未神 未詳 未詳 @

    홍윷헐野/未神 未神 未@¥ 未詳 未詳 @

    韓昌桓/未神 未神 未神 未詳 未詳 @

    李t얼林/威南 未神 未ffi!F 未詳 未詳 @

    좋東模/未神 未神 未神 未詳 未詳 @

    李俊淳/未神 未神 未피¥ 未詳 未詳 @

    거짓은 ↑1[페 밝혀지게 마린임니다. JODK가 옳은 }JX.JZ.만 했으연 이 어마어

    마한 LI(族ill폐l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i견은 아느 i앉혜;짜l핑|의 샤k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t니싸 }j!£.f,승‘Jl.f' I :으로 씨%하신 A:?.'!!에겐 끼,i퍼 j,J:,”’f를 치르시다 새1 ll쐐의 짜l짜은

    보았으나 獨 1'1:도 보지 봇하고 뼈|”]을 달리히-신 분에게 또한 그러 한 l”j"I :_ 끝에

    ε剛임에도 이 나라 이 L\;값의 li!i.i깐을 걱정하시는 분에게 띤상의 패j치U이 있어

    마땅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져 저절로 생긴게 아닌 KBS는 그 뿌리를 찾기에 인색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패文도 아니고 빠잉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않,淡짜도 아닌 두서 없는 말씀을 드

    린 저를 용서히여 주시기 바람니디--

    … 171 정생방흥국 단화앙총 빼외연학사건화 생기섹 236

  • 저12장 옳률

    “j훌外放送을들온게무슨罪가되나?오늘을사는게面目이없다.” 成훌%

    외국방송을들었다고해서 뭐 대단한일이며 죄가됩니까?

    간단히 말씀드L리려고 했는데 그게 어렵군요.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개성이

    야기를하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렬 것은 단파방송사건은 우리 민족의 단순한 일이며, 활로를

    찾으려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 이야기를 하려면 겁니다만 시간 관계도 있고 해서 개성

    에서 있었던 일만 말씀드리지요.

    1 942년 무더운 여름철이었는데 그 떼 단파수신기로 이이덕씨와 몇 사람

    이 미국에서 나오는 백두산호랑이라는방송을들어 보았습니다.

    방송내용은 그야말로 빽쩍찌근한 내용이었는데 뉴스도 있고 뉴스 해설도

    있었으며 이승만박사의 방송도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이랬습니다.

    첫째 뉴스에 이어 뉴스해설 그리고 이숭만박사의 동포에게 고한다는 망송이

    었습니다.

    태평양 함대기- 본토를 떠났음으로 늦아도 9 10월경에는 남태평양 해전이

    있겠으며 일본 주변 국가의 독립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이 절대 보장하며 침략

    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박사는 일본은 패망할 것이므로

    고국에 있는 통포는 서로서로 조직을 해서 왜놈 전쟁에 협조하지 말고 항거하

    라는것이었습니다.

    이러한방송을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수 있겠습니까? 만나는사람마다랫

    찌2장-중언 "llOU뼈율률흩찌 푸슨야가되냐? 요놀율샤는개 Iliff이 얼다ζI< 훌 빼 … 237

  • 속말로 전했습니다. 개성까지 멀다 않고 내려온 양제현씨 등에게 알려 줌은

    물론 그러한 빙-송을 단파로 수신하여 중파로 내고자 하는 충격에 사로잡히기

    도 하였습니다. 일본 동정방송을 중계하면서 다이알을 약간 돌리기만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데 하면서 괴롭기가 한량 없었습니디-

    그러한 심정을 실천에 옮기지 봇한 것은 나 지-신이 애국심은 있어도 나약해

    서 이루지 봇했던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욱중에서 딴 일입니다만 말을 전해 준 양제현씨가 송남헌씨에게

    전해 주고 민족운동 지시-인 4지-회의 애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나라 잎 날을 걱

    정하고 구체적으로 일을 꾸며 니-가셨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몸 둘 바를 몰랐

    습니다. 비록 비겁해서 단파방송은 중파방송으로 내지 봇한 자신이 지금에

    와서는 참으로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참으로 숨 벅친 일이었으며 어깨가

    무거워짐을 당시 느꼈습니다.

    교육계와 체육계의 원로이시고 교회의 장로이시기도 한 박도-화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송도고보 학감이신 빅-도화씨도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나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성방송소 앞 큰길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니-갔더니 김교돈씨라는 분도 같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일본대학을

    나옹 개성에서 크게 과수원을 하시는 분인데 그때 그분을 알게 됐는데 큰길

    에서 만난 세 사람은 그 곳에서 가까운 중국요리집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집에 들어가니 펙주를 한타나 시켜놓고 이것을 다 마시지 않으면 봇

    간다는 것입니다‘ 아짜 주량이 그분들을 따라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야기를 주고받-는데 이박사가 빌한 동지의 규합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히-면

    서 이이덕씨의 시-위로 고한경씨라는 분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단파수

    신기를그분에게 만틀어 주었슴니다.

    당시 이빅-시-는 방송을 통해 젊은 청년은 일본군의 열차를 탈선시키고 군

    수열차를 폭파하라눈 격렬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망송을 들은

    ... (7) 갱생방송국 단파방송 혜외연학사건화 성기석

    238

  • 24∼25세의 젊은이가 3∼4 사람이 있었는데 안색이 변하고 당장 철도를 폭

    파하러 나갈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조미-조마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이덕씨도 미국의 제네랄 서비스방송을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물어 보았더니 태평양전쟁은 뉴기니이-를 기점으로 해서 비율빈 쪽으로 즉

    서쪽으로 우선 전선이 옮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똘로몬 해전에서

    숭전했다고 했는데 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중추부대는 패전한 것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미공군의 폭격은 없을 것 같고 일본에 대한 것도 미지수라는

    것이었습니다.

    객지인 개성에서 정확한정세를알수없어 서울에 올라오4 살펴보기로하

    였습니다‘ 서울은 달리-졌습니다. 골목마다 일본 놈이 붙인 경고문이 나 붙어

    있었습니다

    첫째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

    둘째 유언비어을 퍼트린 자는 엄벌에 처히-며 그런 자를 말견한 사람은 경

    찰에신고하라

    셋째 세 사람 이상 모이면 인되며 필요한 사람은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달라진 서울에서 전에 단파수신기를 만들어 준 박형완이 란 사람을 만나

    고자 하였습니다. 종로에 사는 그 사람 집에를 갔는데 요즘 집에 자주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옷 만나면 낭패인데 하면서 먼 신만 바라보고 있으

    니까 그 집 식구들이 저를 알고 있어서 다행히 그날밤 늦게 잠깐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박형완씨는 켓속말로 정말 놀라운 말을 해 주었습

    니다

    “일본은 머지 않아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독립한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

    찌2장-충언 ‘-~&ft영융률옹 깨 우슨뭘가되냐? 오놀율 싸는게 litl야 엉다."」£ ••••· 239

  • 하게 퍼졌다.”

    이 얼마나 쇼킹한 뉴스입니까? 오늘날의 우리들의 소원은 통일이고 당시

    의 소원은 오직 독립띠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헤어져 종로거리를 지나

    가는데 내왕하는 시-람도 드물었고 뭔가 수군대는 것 같았습니다. 활기 찬 거

    리가 이니고 이-주 갈아 앉은 거리인 깃 같았슴니다 어떻게 보면 지니-기-는 사

    람틀이 모두 딸이 없어진 것 같았슈니다.

    그 당시 총독부도 1갈 못할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정용기피 . 유언비어 유포

    죄, 똥제품임-매죄‘ 도박죄 등으로 사람을 마구 잡아 넣었는데 통제품암배죄

    이외는 전부 단파방송사건과 관련된 듯 덮어놓고 잡아 가두기 시작하여 탄압

    의 강도를 높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시법으로 제정페서 대부분이 형을 받

    고 틀어가게 된 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도 마음놓고 살 수가 없었습니

    다. 그런 가운데서 일본이 땅한다는 깃을 아신 분들은 일제에 항거하고 비협

    조직으로 나간 것입니다. 말하자띤 싱용이나 노력동원을 나가기보다 직결재

    판을 받아 형무소에 들어가기를 원한 사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1942년 11 월경 띠국방송은 솔로몬 3차해전에서 일본은 패전해서 동남

    아 각지에 있는 일본군-은 보급품이 끊끼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승전의 환호성

    을올리고있었습니다

    시울서 다시 개성쓰로 가서 그 해 12월 중순경 아느 날인이l 정기도 경찰

    부에서 방송소를 옹동 수색히-고 이이덕씨를 포승으로 묶어 잔아 갔다는 것인

    니다. 섬뜩한 느낌 속에서 저도 다음날 아침에 사이가(샘간)라는 악질적인

    일본 경찰에 잡혀 갔습니다.

    7억r’i는 고문은 말할 수 없이 극에 달했으며 단파송수신기를 내 놓으라는

    것임니다. 씬갔는 해외 우리 독립투사 다시 말해 중국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

    와 u]극의 이승만박사와 딘파로 송수신을 했으니 송수신기를 내라는 것이었

    습니다. 수신기도 김추-었다가 그들에게 발각되어 조시-를 받았는데 니-중에 그

    …--… [7) 갱생앵송국 단확앵흥 빼외연학사건화 생기색 240

  • 들이 송신기가 아니라는게 확인하게 되어 10개월 간 모진 고문을 받았고 이

    이덕씨는 이이덕£:(;대로 모진 고문 끝에 사경을 헤매게 되고, 홍익범씨도 마

    찬가지여서 명분은 병 보식 이라는 미영 하에 석방되었읍니다만 그로 인해

    다행히 해망 조국을 보기는 하였으나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습니다. 애석하

    기이를데없는일입니다

    유치장내에서 있었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r개성에서는 경찰서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서울에 암송되어 경기도 경찰부

    로 넘어 왔습니다. 넘어와 보니 박용신 아나운서도 이미 들어와 있고 방송국

    사람들이 여러분 들어 와 있어 유치장은 초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치장안

    은오전 중에 참으로조용했으며 오후 4시가지나면 새로운사람이 들어오는

    가 하면 그때부터 불려 나가 고문을 당하게 되어 톱시 분주했습니다.

    말하자면 오후 4시까지 무고한 우리 동포를 마구 잠아 드리기에 바쁘고,

    오후 4시부터는 이 시-란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불러내 고문을 했던 것입니다.

    낮에는 잡아넣기가 비-쁘고 밤에는 사람을 패기가 바쨌던 것입니다

    조서라는 것을 써 본 일이 없는데 일망적으로 두품하게 누가 썼는지 알지

    도 옷하는 조서라는 것을 내밀고 도장을 찍으라는 깃입니다. 찍으라는 것이

    아니라손을 강제로 집-이- 지장을 찍게 했던 것입니다j

    저의 이야기는- 이깃으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만 R늘날까지 산 면목이

    없습니다. 그 당시 일제의 악독한 발폼에 짓 눌려 옥사하신 분들과 석방은 되

    었지만 조국의 독립을 보지 봇하고 그들이 남긴 흑꽉한 고문의 여독으로 돌

    아가신 분들을 생각하연 오늘 이렇게 나와 말씀을 드리는 제 자신이 부끄럽

    습니다,

    찌2장-중언 i빠外&le~울률온깨우슨째가되냐?오늄율사는깨 Iii”이 없다.’」t 흙빼 •

    241

  • 저13장 성기석(成훌짧, 1!920. 1. 15 ∼ 1990. 4. 7)

    센훨11] 증조부 성종영 할아버지 성닉-유는 광1영시 :1 ]학동에서

    헬 E았고 기석씨는거주지를피주로앓져살았다 J 9.JO년 조선망송균 (i;u]따따낀J.,)) 에 기숲직으로 근 -;

    부한 떼 단파수신기(샤싸갖(,\機)블 세작하여 해외밍-송

    을 칭취하연서 임시정부(|래,ll때'.£. J{.J) 소석고l 구 11] 외교부

    흉 홈立풀힘家成흉錫先生 ii~ (~.吹 J、外交 i‘,!;) 활동을 알게 되어 꽉템운동 상황윤 가진

    (家써 성희경)윤 풍하여 이인(↑사 :) ·조병옥(때폐 |‘) 능에세 선달하였디

    1942넌 8윈 새성 망송소 (IJIJJ파따깐!퍼)포 선근되어 소상인 이 인녁 (1시 : I

    t침)과 단파수선기플 제식-하이 미국과 임시정부의 한국어 밍-송을 롱하어 연 I

    함군(![~~ (끼|,·)의 승전파 강꽉균( )\'; f!.(111:) 의 훤-동 등 국세싱세플 수시로 칭취

    하여 민족지_',:_자륜에게 전단히였다. 그리나 1942년 1 2윌 27일 일정에게 말

    각되어 피세띄었다.

    이 일로 인하여 194:3년 9원 경성지망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무선선신

    법(?!!쐐띠f.f,;-u、) 위 l간쓰로 싱역 2년형을 언도 받고 옥고플 지프던 중 1945년

    8월 15일 핑관븐 맞아 출옥하있다.

    정부에시는 고인의 공훈윤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상 애족장을 추서 하

    였다.

    서울중앙l상송드,~(KBS) 앞에 불밍비(끼忘(1'\') 가 있으내. 방영시 가학동(정

    터말)에 묘와 애드,f지사 묘비 ('힐|에rι; |; 샤꽤')가 있다암.

    ·………… 171 갱생방솜국 단와방총 빼외연학사건화 생기석 242

  • 융성기석선생공적비

    썽P 굉영시 가학동소재-묘와 애국지사묘비

    .I' • II ’*%뼈 F빼빼:J6‘l ‘'J l[CI빼’£빼'.l:Hl0l ,명13양 314-551삐 • 뼈뼈;(t~;띠(,; lαi:r ’'l.!.1 ~) 4531”1 • Oil~뼈11a&Bo:r 잇 731fli 찌3캉-생기씩 • • l'J따 ll

  • 접수번호

    ~ ~ ~ 서 6328

    본 적 京i엎 波州 R짧 內i'ili 611 -;-「

  • 공 적 사 항

    유공자영 ; 成 ;않 銀 이 명 ;-------

    1. 1940年 횡~解放送局 技術者으로 勳務時 短波受{톰機펠 짧作하여

    海外放送을- 聽取하면서 &일政消息파 歐美外交$活빼l을 알게 되 어

    흥觀을 통하여 李仁, 趙炳玉 퉁에게 傳逢됩.

    [新東亞(.1988‘ 3) 590面 參照〕

    [短鼓放꿇梅外i車絡짧件;(1988.9.10 放友會궤) 12面 參照〕

    2. 1942. 8A 開城放꿇所로 뺑動되어 所長인 李仁德과 短波受f홈機롤

    製作하여 쫓國과 臨政의 韓國語 放送을 通하여 聊合i랍의 體戰파

    光復jp:의 活動 둥 國際↑훔勢플 隨時로 聽取하여 民族웹양훌者틀에 게

    {맹達합.

    [獨立運動史(國흉짧勳處) 第4卷 878面 參照]

    [韓國放送 60年史 73面 參照〕

    〔짧國電氣通信 100年史 (下卷) 453面 參照〕

    3. 1942. 12. 27 日警에 게 發찔되 어 아나운서 인 宋珍根, 朴업iH흠 퉁이

    被速되자 숲r짧가 鏡짧되어 被i짧됩.

    [ 日帝뽑略下 韓國 36年史 第13卷 314面 確꿇]

    4. 1앓. 9A 京城地方法院애서 所調 保安法 無짧電借法으로 戀짧 2年융 받읍.

    [ 日 帝뽑略下 홍채國 36年史 第13卷 551面 確認〕

    〔獨효運휠1史(國흉報關處) 第4卷 878面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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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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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子

    基完

    …………· 171 경생방송국 단와방흥 해외연락사건파 생기섹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