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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정진성 * 지은이│정진성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을 수료하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유엔인권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자문위원회 위원으 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일본의 사회운동론』(나남, 2003), 『일본군 성노예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실상과 그 해결을 위한 운동』(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인권개선조건』(공저, 서울대 학교출판부,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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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

    논단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정진성

    * 지은이│정진성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을 수료하고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유엔인권소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자문위원회 위원으

    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일본의 사회운동론』(나남, 2003), 『일본군 성노예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실상과 그

    해결을 위한 운동』(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한국과 일본의 인권개선조건』(공저, 서울대

    학교출판부, 2010) 등이 있다.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59

    1. 문제제기 : ‘재일-’을 둘러싼 호칭들의 경합

    재일한인또는재일동포,경우에따라서는재일한국인으로불리는사람들1)은일

    본에거주하는한반도출신의사람들로서,일본국적을취득한사람,한국국적을

    가진사람,조선적2)사람들을모두포함한다.영어로한다면한국출신이주자라

    는의미의‘코리안스인재팬’(KoreansinJapan)으로간단하고명확하게표현될

    수있는이들의호칭은재일한인,재일동포,재일한국인외에도재일조선인,재일

    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재일,재일코리안(コリアン),재일한인,재일교포등

    다양하게나타난다.이들호칭에서‘재일’은공통적이라는점에서볼때,코리안

    을어떻게부르는가에따라차이가나타나고있다는것을알수있다.

    코리안으로표상되는것은때로는국가이고때로는민족이다.재일한국인과

    재일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은‘한국’이라는국가의이름을붙여부르는명

    칭이다.그러나재일조선인만해도이호칭에서조선이북한이라는국가를의미

    한다고믿는사람,분단이전의통일조국을뜻한다고생각하는사람,또는조선반

    도라는지역을의미하는것으로보는사람이있는것처럼‘조선’은다양한의미를

    상상하게만든다.그리고재일동포와재일교포는남북한사람들의입장에서같

    은민족임에근거한호칭인반면,주로일본에서사용되고있는재일과재일코리

    안은재일동포의존재자체에주목하면서위와같은국가와민족이라는측면을

    지운다.

    근대국가형성후에이루어진이주의경우대부분출신국가의이름으로이

    주자들을부르는것이보통이다.일본에거주하는미국인,영국인등등.다른한편

    1) 이하에서는 특별한 구별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을 아우를 때 ‘재일동포’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2) 일본정부는 조선적은 국적이 아니며, 여기서 조선은 국명이 아니라 조선반도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3장

    에서 부연할 것이다.

  • 일본비평 7호260

    연구논단

    우리는해외에거주하는사람들을별문제없이동포또는교포로부른다.재미동

    포,재중동포등등.그렇다면,왜하필‘재일-’의경우에는이주자들의호칭이때

    로는국가를,때로는민족을표상하거나혹은둘다를지워버리는형태로나타나

    는것일까?그리고이호칭을둘러싼혼란은왜여전히계속되고있는것일까?

    본연구는이와같이다양한호칭들속에서민족과국가가표상되는방식은

    식민지이후한반도를둘러싼정치적・역사적조건들과결부되어있으며,각각의

    호칭이담고있는그와같은역사성을고려하지않고서는호칭들의경합이갖는

    현재적함의를살펴보기힘들다는문제의식에서출발한다.정치적,역사적조건

    들은한국과일본사회가이들의존재를어떻게표상하는지뿐만아니라당사자

    들이자신의정체성을이해하고위치짓는자기해석의과정과도무관하지않다.

    이에먼저재일동포등의호칭을둘러싼갈등의지점과쟁점들을살펴보고,이것

    이어떠한역사성을갖고있는것인지를당사자,한국과일본의정부와사회,관

    련연구자들이이들에게부여하는호칭들을통해설명한후,호칭사용의혼란이

    보여주는현재적함의가무엇인지를밝히고자한다.

    연구의방법은재일동포관련선행연구들에대한문헌분석,그리고신문및

    학술지에나타난재일동포등명칭의등장빈도와추이를양적으로분석하는것

    이다.주된분석대상자료와연구방법은아래와같다.

    분석 자료 및 연구 방법

    주요 자료 및 연구방법

    재일동포 자신 연구물검토

    일본정부 정부간행자료검토

    일본일반사회 『아사히신문』기사검색

    일본연구자 국립정보연구소정보제공서비스(CiNii)통합검색

    한국정부 국회도서관.외교통상부홈페이지검색

    한국일반사회 『조선일보』기사검색

    한국연구자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통합검색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61

    2. 재일동포 호칭 혼란의 쟁점과 배경

    우선,재일동포호칭과관련한혼란에는어떠한쟁점들과배경이놓여있나?

    첫째,일제의강점과분단으로인해한국이라는국가를지칭하는명칭에혼

    란이발생하였다는점이다.한국은근대국가를지향하면서‘조선’에서‘대한제국

    (한국)’으로국명을바꾸었지만얼마되지않아일본의제국주의를경유하면서

    식민지‘조선’으로불리게되었다.해방후에는북쪽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남쪽에‘대한민국’(한국)이건국되었지만남북은각기국가의정통성을주

    장하면서서로의국가명칭을인정하지않고있다.그렇다면현재의국적에따라

    한국국적은한국인,북한국적은조선인으로재일동포의출신을표현하면되는

    것일까?하지만그것은분단이전의역사로거슬러올라가면그리간단한문제가

    아니다.한국은현재의대한민국뿐아니라대한제국의이름이기도하고,조선은

    일제시기국명이지만현재북한국명이기도하기때문이다.게다가조선은한반

    도전체를의미하기도한다.더욱이일제시기이들이조국을떠나올때분단된남

    북한이라는현재의국명은존재하지도않았다.

    따라서이러한긴장은두번째배경,한국근대사의굴곡과함께이루어진이

    들의복잡한이주의역사와그에따른국적의분화와도연결된다.대부분의소수

    민족집단이거주국에입국한시기에따라집단의구조가형성되었으나,재일동

    포의경우에는국적에따라단절되는몇개의집단이존재하는위에,각기다른

    입국시기에따른구성이더해져그구조가더욱복잡하다.현재일본에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의대다수는일제강점기일본이제1차세계대전특수를맞았을때부

    터‘조선’에서직업을찾아이주해온사람들과제2차세계대전기에강제연행된

    사람들을1세대로하여형성된집단에뿌리를두고있다.해방후북한은일본과

    의국교단절로새로운이주를형성하지않았지만,한국의경우20년의공백후인

    1965년일본과의국교수립후일련의변화과정을겪으며활발한이주를계속해

    왔다.이러한공백기를거치면서일본에서는재일교포들을일제시기에이주한

    올드커머,1965년이후에이주한뉴커머로부르기도한다.

  • 일본비평 7호262

    연구논단

    그렇다면이경우에는현재의국적이아닌이들이이주할당시의나라이름

    에따라각기‘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으로부르면되는것일까?이역시도앞

    서언급한국명의변화때문에혼란을초래할수있다.더욱이올드커머재일동포

    는다시크게한국국적과조선적및일본적재일동포로나뉘며,조선적재일동포

    는심정적으로북한정체성을갖는사람들과분단이전의통일조국을생각하는

    사람들(무국적이라고표현하기도한다)의다소이질적인두집단으로나뉠수있

    다.이주당시의국적에따른분류역시마찬가지의혼란을가져오는것이다.

    셋째,국적에따른분류가어려운또다른이유이자가장주목해야할지점은

    대다수의재일동포들이3,4세대에이르도록일본국적을취득하지않은채로있

    다는사실이다.에서볼수있듯이,재일동포의수는강제연행이대규모로

    이루어졌던일제말기에최고규모를보인후해방이되자대부분귀국하고60만

    명전후로유지되다가,이후북송3)과뉴커머이주,자연증감및귀화등의요소들

    이상쇄되면서비슷한규모로유지되고있다.일본국적취득(귀화)은1950년대

    3)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3,339명으로 추산됨(민단 통계, http://www.mindan.org/kr/shokai07.php).

    재일동포의 구성

    한국적불법

    노동자

    합법뉴커머

    일본적

    무국적

    조선적

    식민시기

    국적 단절

    전쟁(해방) 후 도일(渡日)시기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63

    년도 귀화수 년도 귀화수 년도 귀화수 년도 귀화수 년도 귀화수

    1952 232 1964 4,632 1976 3,951 1988 4,595 2000 9,842

    1953 1,326 1965 3,438 1977 4,261 1989 4,759 2001 10,295

    1954 2,435 1966 3,816 1978 5,362 1990 5,216 2002 9,188

    1955 2,434 1967 3,391 1979 4,701 1991 5,665 2003 11,778

    1956 2,290 1968 3,194 1980 5,987 1992 7,244 2004 11,031

    1957 2,737 1969 1,889 1981 6,829 1993 7,697 2005 9,689

    1958 2,246 1970 4,646 1982 6,521 1994 8,244 2006

    1959 2,737 1971 2,874 1983 5,532 1995 10,327 2007

    1960 3,763 1972 4,983 1984 4,608 1996 9,898 2008

    1961 2,710 1973 5,769 1985 5,040 1997 9,678 2009

    1962 3,222 1974 3,973 1986 5,110 1998 9,561 2010

    1963 3,558 1975 6,323 1987 4,882 1999 10,059 합계 296,168

    재일동포 귀화자 수

    출처 : 민단 통계[http://www.mindan.org/kr/shokai07.php].

    출처 : 1911~2005년까지는 민단 웹페이지 (www.mindan.org), 2006~2011년은 일본 법무성입국관리국.

    연도 명수 연도 명수 연도 명수 연도 명수

    1911 2,527 1936 690,501 1961 567,452 1986 677,959

    1912 3,171 1937 735,689 1962 569,360 1987 676,982

    1913 3,635 1938 799,878 1963 573,537 1988 677,140

    1914 3,542 1939 961,591 1964 578,545 1989 681,838

    1915 3,917 1940 1,190,444 1965 583,537 1990 687,940

    1916 5,624 1941 1,469,230 1966 585,278 1991 693,050

    1917 14,502 1942 1,625,054 1967 591,345 1992 688,144

    1918 22,411 1943 1,882,456 1968 598,076 1993 682,276

    1919 26,605 1944 1,936,843 1969 607,315 1994 676,793

    1920 30,189 1945 1,115,594 1970 614,202 1995 666,376

    1921 38,651 1946 647,006 1971 622,690 1996 657,149

    1922 59,722 1947 598,507 1972 629,809 1997 645,373

    1923 80,415 1948 601,772 1973 636,346 1998 638,828

    1924 118,152 1949 597,561 1974 643,096 1999 636,548

    1925 119,870 1950 544,903 1975 647,156 2000 635,269

    1926 143,798 1951 560,700 1976 651,348 2001 632,405

    1927 165,286 1952 535,065 1977 656,233 2002 625,422

    1928 238,102 1953 575,287 1978 659,025 2003 613,791

    1929 275,206 1954 556,239 1979 662,561 2004 607,419

    1930 298,091 1955 577,682 1980 664,536 2005 598,687

    1931 311,247 1956 575,287 1981 667,325 2006 598,219

    1932 390,543 1957 601,769 1982 669,854 2007 593,489

    1933 456,217 1958 611,085 1983 674,581 2008 589,239

    1934 573,695 1959 619,096 1984 687,135 2009 578,495

    1935 625,678 1960 581,257 1985 683,313 2010 565,989

    재일동포의 수 (단위 : 명)

  • 일본비평 7호264

    연구논단

    이후차츰증가하다가1995년이후매년1만명수준으로유지되면서더늘어나

    지않고있으니(참조),이를통해아직도수세대를거쳐조선적,한국국적

    을유지하고있는사람들이엄청난규모로존재한다는것을알수있다.

    그런데이들이일본에거주할수있는법적지위는이들의이주시기와국적

    에따라각기다르다.여러과정을거쳐현재는일제시기에이주한사람들과그들

    의자손들(한국적,조선적모두포함)에게특별영주자격이주어져있으며,4)그밖

    에한일수교후한국국적을가지고일본에입국하여정착한사람들은일반영주

    자격을가지고있다.

    세계대부분의이주자들은한두세대에걸쳐곧바로현지국적을취득하기

    때문에출신국이나출신지역,민족명으로별갈등없이불린다.일본계칠레인,베

    트남출신한국인등등.이와비교할때,일제시기에이주한조상으로부터이루어

    진2,3,4세대의한국국적,또는조선적사람들의민족적정체성은매우복합적

    이고예민하다는것은어렵지않게짐작할수있다.이러한분위기에서귀화한재

    일동포들의입지역시간단치않다.1947년일본정부에의해외국인등록을하

    며국적란에‘조선’을기입한후,한국국적으로바꾼사람들,북한에자신의정체

    성을두고있는사람,떠나올때의조국조선을자신의국적으로생각하는사람들

    등수많은사람들이재일동포를구성하면서귀화하지않고한국적,조선적을유

    지하고있다.이러한사실역시이들을지칭하는명칭들을둘러싼복잡한지형을

    만들어내고있는것이다.물론오늘날에는남북한의정치적갈등을넘고일본국

    적취득자까지도포함하여한반도출신들이민족적정체성에기반하여함께하

    는일본내재일동포들의활동도늘어나고있다는점을부인할수는없다.

    넷째,일본사회의폐쇄적특수성역시재일동포의귀화를가로막으면서명칭

    혼란의배경으로작동한다.일본사회는단일민족의신화가사람들의정신에내

    재해있고,민족주의또는국가주의의역사가근대를통해강화되어현재에도중

    요한사회적현상으로나타난다.이러한분위기에서일본사회의한국을비롯한

    4) 올드커머 중 특별영주자가 아닌 사람들(밀항자 출신 집안에서 지금도 ‘정주자’라는 자격으로 사는 경우 등)도 있다.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65

    아시아타국민에대한차별은상당한수준이다.때문에많은재일동포들은‘귀화

    는곧동화’라고생각하며자신들의정체성을지키고자하는심리적동기가강화

    되는경향이있고,이것이이들의귀화를막는요인으로작동하면서국적에따른

    호칭사용에혼란을가져오는측면이있다.5)

    3. 재일동포 자신의 호칭 사용 변화

    해방직후재일동포들은일제시기에자신을부르던방식인조선인으로스스로를

    호칭했다.이는남북한분단과정부수립후여러명칭으로분화되어갔는데,이

    러한재일동포자신들의호칭사용분화를남북한정부와밀착된민단/총련과재

    일동포일반으로나누어살펴보자.

    1) 해방 직후 식민지 ‘조선’의 연속: ‘재일조선인’

    앞서살펴본대로이시기재일동포들은일본사회의전반적인인식의맥락속에

    서대부분‘재일조선인’으로자신들을호칭했던것으로보인다.해방후귀국하지

    못하고일본에남은재일동포들은재류조선인대책위원회,재일본조선인민거류

    동맹등300여개의단체를결성했는데,이러한단체를규합하여전국적인통일

    단체를만들기위해1945년9월재일본조선인연맹(이하조련)중앙준비위원회

    가결성되었고,이를모체로1945년10월조련이정식으로발족되었다.이때재

    일(본)조선인이라는용어가이들스스로를호칭하는데사용되었다.6)

    조련의좌경화에반대하여새로운단체를설립한중립및우파민족주의자들

    도‘조선’이라는명칭을사용했다.조련의결성에반대하여우파적민족주의자들

    5) 재일동포 3, 4세를 면담한 김숙자에 따르면, 그들은 “남이든 북이든 민족을 나타내는 국적이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일본

    국적은 싫다” “일본이 식민지 역사를 사죄하고 국적을 자유선택하게 되었을 때 (귀화를)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김숙

    자, 「재일조선인의 정체성과 국적」,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7, 31~32쪽, 41쪽).

    6) 조련은 차츰 좌경화되어 1949년 일본정부에 의해 해산되었는데, 이후 1951년 친북적 입장을 재일단체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표명한 재일조선총일민주전선(민전)이 결성되었고, 1955년 친북한 단일 체제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

    련)로 재탄생되었다. 1950년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가 조직한 조국방위원회(조국방위대로 개편됨)는 총련 결성 후 해산

    되었다.

  • 일본비평 7호266

    연구논단

    은1945년11월16일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이하건청)을발족했고,무정부주

    의계및민족주의적중립파들도1946년1월20일에신조선건설동맹(이하건동)

    을결성했으며,건청과건동을비롯한군소32단체들은반공우익진영의결집체

    로서1946년10월3일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세웠다.이단체는1948년대한민

    국정부의수립과함께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개칭했다가1994년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하민단)으로다시개칭하여오늘에이르고있다.7)

    이와같이해방직후부터남북한정부설립이전시기,재일동포들은자신들

    을재일조선인으로호칭했다가1948년후호칭이분화되었다.

    2) 민단과 총련: ‘재일한국인’, ‘재일조선인’, ‘재일동포’

    한국과북한정부와각각관련있는민단과총련은국가의이름을명확히나타내

    는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의명칭을사용하면서,동시에두단체모두가재일동

    포의호칭을함께혼용하여현재에이르고있다.재일한국인과재일조선인은대

    한민국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국명과직결되어있다.한편으로는두

    단체가동시에같은민족임을강조하는재일동포라는호칭을공히사용하고있

    는점이매우흥미롭다.

    1978년민단중앙본부에서발행하는『차별백서』에서는‘민단은1948년새

    롭게시작할때부터“재일한국인의권익옹호를기한다”는조항을강령의하나로

    포함시켜왔다’고말하고있는데민단의홈페이지에서는같은강령을“재일동포

    의권익옹호를기합니다”라고기술하고있다.민단홈페이지에는전체적으로재

    일동포라는용어가더자주눈에띈다.8)1981년『차별백서』는책전체에서재일

    동포와재일한국인을혼용하고있다.

    한편총련은단체명에‘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라고명확히명칭을드러내고

    있지만,총련에서발행하는문서들에는재일조선인과함께재일동포라는용어가

    7)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은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9월 8일 재일동포의 유일한 공인단체로서 인정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28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1994년 4월 20일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으로 개칭했다.

    (http://www.mindan.org/kr/)

    8) http://www.mindan.org/kr/jigyo01.php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67

    더많이사용되고있다.“재일조선인운동과동포들의생활에서……”,“70만재일

    동포들의자애로운어버이이신……”,“총련과재일동포들을현명하게이끌어주

    시는……”9)등에서이를확인할수있다.

    요컨대민단과총련은각기한국과조선이라는국가이름을명확히하면서

    도,같은민족이라는점을강조하는재일동포라는호칭을공유하고있는것이다.

    3) 재일동포 사회에서 호칭의 분화

    해방이래재일조선인으로자신을불러왔던재일동포중일부가한국정부수립

    후재일한국인으로호칭을변경하기시작했다.이후남북한의분단과그에대한

    인식에따라재일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재일,재일한조선인등으로그호

    칭이분화되어갔다.여기서분화라고함은시기에따른단순한변화가아니라,

    여전히재일조선인등의명칭이쓰이는가운데이러한새로운명칭들이병렬적

    으로사용되고있다는뜻이다.재일동포호칭역시시기에관계없이광범위하게

    사용되고있다.

    이와관련해서는한사람의학자가일생을통하여사용한재일동포관련호

    칭을살펴봄으로써흥미로운흐름을포착할수있다.모모야마(桃山)대학교

    수를하면서1970년대부터재일동포연구를했던서용달교수의경우를보면,

    1970~1972년에는재일동포,1972~1977년재일한국인,1977~1992년재일한

    국조선인(간혹재일교포,재일한국인,재일동포도사용)을사용하다가,1992년9월

    11일일본매일신문에서는재일한조선인으로통일할것을제창한후,계속이용

    어를사용했다.10)

    한편재일학자강재언은1996년출판한한권의책에서재일,재일동포,재

    일조선인,재일한국조선인명칭을같이쓰고있다.이러한경향은최근서울의여

    러대학에서나온,재일동포를다룬재일동포3,4세들의사회학,인류학분야학

    위논문들에서도나타난다.필자가참고한석사학위논문여섯편을보자.「1990

    9) 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 『総聯』, 1991.10) 徐龍達先生還曆記念委員會, 「徐龍達先生敎育硏究業績」, 『アジア市民と韓朝鮮人』, 日本評論社, 1993, 725~749쪽.

  • 일본비평 7호268

    연구논단

    년대이후‘마당운동’과재일한국・조선인의아이덴티티」,「재일코리안과일본국

    적취득문제」,「총련계재일조선인커뮤니티와조선학교」(‘재일동포’도사용),「재

    일조선인의국적과정체성」,「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노선전환에관한연구」

    (‘재일동포’도사용),「다문화공생일본과은폐되는식민:재일조선인청년단체

    (KEY)의활동을사례로」등이그러하다.11)논문작성자들이2000년대중후반서

    울에유학왔으니한국국적을소유하고있는재일동포3,4세의젊은학자들인데,

    이들에게서재일조선인(2명),재일한국조선인,재일코리안,재일동포등의호칭

    이골고루사용되고있는것이발견되는것이다.일본내에서재일동포지식인들

    이사용하는호칭은여기에재일한국인,재일등을더해서보다광범위하다.

    이와같이재일동포자신이부른호칭은재일조선인에서재일한국인,재일한

    국조선인을거쳐재일코리안으로변화하는느슨한흐름이존재하면서도,그각

    각의호칭이나름의입장에서지속적으로쓰이고있다.그중‘재일동포’호칭이

    그흐름과입장들을관통하면서가장자주등장한다.

    ① ‘재일조선인’과 ‘재일한국인’ : 민족 혹은 국가

    재일조선인은여전히가장널리사용되고있는것으로보인다.‘재일조선인’은일

    제시기에‘조선’으로부터일본으로건너온사람들과그후손이라는의미를담고

    있는것으로,일본인도한국인도아닌역사성을지닌존재12)라는점을부각시키

    고자하는호칭이다.그역사성을강조하기위해서조선적에서한국적으로바꾼

    사람들뿐만아니라,일본에서태어난젊은세대들까지도이를광범위하게사용

    하고있다.13)‘조센진’이라는놀림과차별을기억하는재일동포들은바로이차별

    11) 김요자, 「1990년대 이후 ‘마당운동’과 재일한국·조선인의 아이덴티티」,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4 ; 김광섭, 「재

    일코리안과 일본국적 취득문제」,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5 ; 손애경, 「총련계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와 조선학

    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논문, 2006 ; 김숙자, 「재일조선인의 정체성과 국적」,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7 ; 강철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노선전환에 관한 연구」,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논문, 2008 ; 김겨레, 「다문화

    공생 일본과 은폐되는 식민 :재일조선인 청년단체 KEY의 활동을 사례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논문, 2009 분석

    결과이다.

    12) 김겨레, 「다문화공생 일본과 은폐되는 식민 :재일조선인 청년단체 KEY의 활동을 사례로」.

    13) 서경식, 「재일조선인이 나아갈 길 :‘에스닉 마이너리티’인가, ‘네이션’인가」, 『창작과비평』 겨울호, 1998.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69

    을직시하기위해서재일조선인이라는호칭의역사성에주목한다.서경식은“일

    본사회에서‘조센진’으로서차별당해온우리들은그부당함에저항하고자기자

    신과민족의존엄을되찾기위해서야말로감히‘조선인’이라고칭해야하지않을

    까?”14)라고주장한다.

    ‘재일조선인’에서‘조선’이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국가가아니

    라조선민족전체를가리킨다는점은이용어를사용하는대부분의사람들이동

    의하는바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여전히북한이라는국가와혼동될수있다는

    문제는남아있다는점에서,여러다른호칭들이함께사용되고있는것이다.

    재일조선인호칭만이존재했던상황에서한국정부의수립과함께한국국적

    자의증가가이어지면서재일한국인호칭이병용되기시작했다.한국의학술연

    구정보서비스(RISS)와유사한일본의학술정보서비스인국립정보연구소정보제

    공서비스(CiNii)에는1952년에처음으로재일한국인이라는호칭이나타난다.15)

    그러나이때‘한국인’은한국국민만을가리키는것이므로,매우제한적으로만사

    용되고있는것으로보인다.

    ② ‘재일한국조선인’: 분단 상황의 반영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이남북한국적에따라분리되어적용되는상황에서

    이들을포괄하는용어로서,그리고남북한분단의상황을극복하자는의도에서

    ‘재일한국조선인’호칭이사용되기도한다.언제어떤계기가이새로운호칭을

    만들었는지에대해서는의견이일치하지않으나,1970년대초반인것은확실한

    듯하다.재일동포윤건차교수16)는1973년10월에창간된잡지『계간마당』에

    ‘재일한국조선인’이처음으로등장했다고말하는데,노이리나오미(野入直美)17)

    는외국인등록시의국적항목이나지자체의행정용어로서‘한국조선’이사용된

    것이일본사회에‘재일한국조선인’이정착된계기라고지적했다.일본의국립정

    14) 서경식, 「재일조선인이 나아갈 길」.

    15) 権一天, 「在日韓國人對策樹立の急務」, 『共通の廣場』, 獨立評論社, 1952. 1(5).16) 尹健次, 『在日を考える』, 平凡社, 2001.17) 野入直美 外, 『多文化敎育における‘日本人性’の實證的硏究』, 龍谷大學, 2007.

  • 일본비평 7호270

    연구논단

    보연구소의정보제공서비스(CiNii)에서‘재일한국조선인’이처음등장하는것은

    1975년잡지『세카이』(世界)18)이며,그후재일동포의법적지위나인권문제에

    관련한논문에서이호칭이늘고있다.

    그러나‘재일한국조선인’에대한비판이역시제기되었다.민족분단의상황

    을그대로받아들인호칭이라는것이다.“일본사회에서는요즈음‘재일한국조선

    인’이란기묘한호칭이정착해가고있다.이것이야말로바로민족분단상황의반

    영인데,당사자인재일동포가이러한호칭을아무런의문도없이받아들이고있

    는현실이개탄스럽다”는것이다.19)

    ③ ‘재일’, ‘재일코리안’, ‘재일동포’ : 이주의 현재성

    강상중,박일,윤건차등대표적인재일동포학자들은자신들을‘재일’로부른

    다.20)서경식은“‘일본에살고있는’이라는상태를기술하는것에지나지않는

    …….애매함이우리민족과일본사이에역사적이며또한현재적으로존재하는

    여러가지문제의답답함을덮어버리기때문인지이말도빈번히사용되고있

    다”고재일이라는용어에대한입장을설명했다.21)

    앞서언급한국립정보연구소정보제공서비스(CiNii)에서‘재일코리안’이라

    는표기가처음등장한것은1981년인데22),1990년대에들어서그들의정체성이

    나민족성을다루는글에서이것이활발하게쓰이기시작했다.한젊은재일동포

    연구자는재일조선인,재일한국조선인이란어휘자체가갖는불우함의인상때

    문에‘재일코리안’으로자신을부르게되었다고설명했다.23)

    앞서살펴본대로민단과총련에서모두재일동포라는호칭을사용하고있

    는것과마찬가지로,위여러호칭을사용하는재일동포들이‘재일동포’를동시에

    18) 宮田浩人, 「國內にみる朝鮮政策の歪み―在日韓國朝鮮人處遇問題」, 『朝鮮政策の轉換を求める』, 1965.19) 서경식, 「재일조선인이 나아갈 길」.

    20) 강상중, 『재일 강상중』, 삶과 꿈, 2004; 朴一, 『在日という生き方』, 講談社, 1999; 尹健次, 『在日を考える』.21) 서경식, 「재일조선인이 나아갈 길」.

    22) 田口純一, 「在日コリアン硏究の成果と問題點」, 『名古屋大學文學部硏究論集』, 1981, 81.23) 김광섭, 「재일코리안과 일본국적 취득문제」.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71

    쓰고있는경우가많다.예컨대서경식24)은“재일동포를총칭해서‘재일조선인’이

    라고부르기로하겠다”고말하면서글전반에서‘재일동포’와‘재일조선인’을같

    이쓰고있다.즉‘재일동포’를다른어떤호칭의경우에도함께사용될수있는기

    본적인용어로보는것이다.

    4. 재일동포에 대한 호칭 사용의 변화

    1) 일본의 재일동포 호칭 사용

    식민지강점과함께대한제국이라는국호를조선으로바꾼일본에서지금까지도

    한반도의일반적통칭은조선이다.북조선,남조선이널리쓰이다가한국이라는

    이름이자리잡기시작한것도얼마되지않는다.남조선이라는말은이제거의사

    라졌지만,‘북조선’은아직도북한을가리키는용어로많이사용되고있다.그러

    니‘재일조선인’이아직도일본사회에서주류적인통칭인것이다.이로부터재일

    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이새롭게부상하다가,최근‘재일코리안’이차츰자

    리를넓혀가고있다.

    ① 일본정부

    일제시기에한국의명칭을조선으로부르던일본정부는1947년외국인등록령

    시행규칙(1947.5.2)별기(別記)등록신청서양식내주의사항제3호에“국적란

    에대만인및조선인은대만또는조선으로기입한다”고설명했다.

    1948년한국과북한정부가수립되면서일본정부는‘한국인’과‘조선인’을

    분리하여호칭하며,함께지칭해야할때는한국・조선을병렬하여사용한다.한

    국국적을가진재일동포에대해서는재일한교(韓僑),재일한인을거쳐1965년

    한일국교수립후부터재일한국인으로호칭을정착시키고있다.한일양국이서

    명한1951년‘재일한교법적지위문제위원회’,1952년‘재일한인의국적및처우

    24) 서경식, 「‘재일조선인’의 위기와 기로에 놓인 민족관」, 『역사비평』 통권 35호. 1996.

  • 일본비평 7호272

    연구논단

    에관한한일협정안’에서한국적재일동포에대한호칭이재일한교와재일한인

    이었다는사실을알수있다.한국과일본이1965년서명한“대한민국과일본국

    간의일본국에거주하는대한민국국민의법적지위와대우에관한협정”에서는

    ‘일본국에거주하는대한민국국민’으로재일동포를명명하고있는데,이협정을

    설명하는일본정부의관료들의글들에는‘재일한국인’이라는용어가일관되게

    사용되었다.25)

    조선적동포에대해서는특별한호칭을사용하고있지는않는것으로보이

    지만,재류외국인통계는외국인통계의범주에서한국/조선을하나의범주로통

    합해서통계를산출하고있다.26)그러나북한과국교를수립하지않은일본정부

    의입장에서조선은국명을의미하는것이아니라한반도를의미한다.최근재일

    동포를지칭할때는남북한어느한쪽을명확하게지칭하는입장을피하여,재일

    한국조선인,재일코리안등의호칭을혼용하고있다.

    지방정부도마찬가지입장이다.몇가지예를들면,재일한국인집주지역의

    하나인가와사키(川崎)시의한보고서에서는“전후부터……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민족차별철폐,전후보상문제……”라고쓰고있으며,27)사카이(堺)시도외

    국인통계에‘한국및조선’을한범주에넣고있으나여기서조선은국적이아니

    라조선반도출신자를가리킨다는점을명기하며,이들을지칭할때는‘재일코리

    안’이라고말하고있다.28)

    요컨대일본정부는식민지조선이라는역사적실체를기반으로하면서도그

    것이현재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조선과혼란을일으킬것을염려하여,

    한국조선인,코리안등남북한을포함하는용어를사용하고있는것이다.

    25) 당시 법무성 입국관리참사관이었던 다츠미 노부오(辰已信夫)는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과 출입국관리특별법”

    (『법조시보』 18권 3호)을, 당시 입국관리소장 야기 마사오(八木正男)는 “재일한국인의 처우에 관하여”(『국제문제』 1965

    년 5월호)를 발표했다(정인섭,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26) 財團法人 入管協會, 『平成5年版 在留外國人統計』, 1993.27) 川崎地方自治硏究センタ-, 『統計から見た川崎市內の外國人』, 1992, 2쪽. 28) 市民人權局市民生活部區政課, “2006年 제3절 사회적 특성, 2.인구”(http://www.city.sakai.lg.jp/city/info/_

    kanribosai/hogoplan/1-4-3.html)/ 堺市, 「龍谷大学 李洙任教授からいただいたご意見」, 2006년 중 ‘……재일코리안이 지역에 뿌리내렸기 때문에 차별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73

    ② 일본사회 일반

    남북한관계에예민한일본정부가재일조선인이라는용어를피하는경향이일반

    사회에서도1970년대이후유사하게나타나고있다.의『아사히신문』기

    사검색결과는그러한경향을잘보여주고있다.해방후거의전적으로사용되

    었던‘재일조선인’은1965년한일협정이후‘재일한국인’에게자리를내주기시

    작하여1970년대들어서부터는‘재일한국인’의사용빈도가압도적으로많아졌

    다.1976년에재일한국조선인/재일한국인용어가돌출한것은이해에NHK방

    송에한국어강좌개설을요구하는일본국민의서명운동이일어난것이계기가

    되어,기사를통해명칭등장빈도가많아진데다가관련시리즈물이게재되었기

    때문이다.29)‘재일한국조선인’은1976년일시적으로두드러졌다가재일동포들

    의논의에영향을받으며차츰사라졌다.‘재일한국인’기사가1991년크게증대

    한것은일본외상의한국방문과한일각서의결착이이해에이루어졌기때문으

    로해석할수있다.30)

    29) NHK한국어 방송은 강좌 명칭을 둘러싸고 ‘한국어’로 할지 아니면 ‘조선어’로 할지 진통을 겪은 후 결국 8년 후인 1984

    년에 한국어도 조선어도 아닌, 문자를 지칭하는 ‘한글 강좌’를 채택, 강좌명을 ‘안녕하십니까, 한글 강좌’로 하였다.

    30) 이 한일각서에 따라 ‘일본국과의 평화조약에 기인하여 일본의 국적을 이탈한 자 등의 출입국 관리에 관한 특례법’이 제

    정되어, 1965년 한일법적지위협정에서 재일동포 2세까지만 인정했던 영주권을 3세 이하까지 대대로 인정하게 되었

    으며, 조선적 동포도 여기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들을 특별영주권자라 부른다.

    일본사회의 재일동포 명칭

    출처 : 1945~1983 기쿠조(聞藏)II VISUAL 『아사히신문』 축쇄판. 1984~2010 아사히신문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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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2009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 조선인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

    재일 교포

  • 일본비평 7호274

    연구논단

    ③ 연구자

    일본정부와신문사는한일관계에민감하게반응하며호칭사용에대한입장을

    취하는데반해,일본의연구자들은재일동포자신이사용하는호칭에보다민감

    하게대응하는것으로보인다.앞서언급한CiNii를검색해본결과,대체로재일

    조선인용어가해방후지금까지전시기를통해가장많이사용되는것으로나타

    났다.한국정부수립후‘재일한국인’이등장했으며,한일수교후그사용빈도는

    점차늘어나서이후꾸준히재일동포연구에등장하고있다.‘재일조선인’,‘재일

    한국인’보다포괄적인용어로만들어진‘재일한국조선인’이1970년대중반이후

    연구자들사이에도등장하여사용되기시작했다.31)이와함께아주적은빈도이

    지만‘재일조선한국인’,‘재일조선인한국인’을사용하는연구도간혹나타났다.32)

    1990년대재일코리안이라는용어가등장한후그사용은1990년대중반비약적

    으로증가하여,2000년대들어서는재일조선인과함께재일동포를표상하는대

    표적인용어로자리잡고있다.‘재일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은차츰사라

    지고있다.

    31) 福岡安則, 『在日朝鮮人・韓国人-若い世代のアイデンテイテイ』, 中公新書, 1993.32) 黑川洋治, 『在日朝鮮・韓国人と日本の精神医療』, 批評社, 2007 ; 福岡安則, 『在日朝鮮人・韓国人』.

    일본연구자들의 재일동포 호칭

    출처 : CiNii (http://www.cinii.ac.jp) 논문 검색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 조선인

    재일 조선 한국인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

    재일 교포

    50

    45

    40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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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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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

    1959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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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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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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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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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2007

    2009

    1971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75

    2) 한국의 재일동포 호칭 사용

    한국사회에서쓰이는일반적인호칭은‘재일동포’,‘재일교포’이다.연구자들중

    에도재일동포혹은재일교포라는호칭을사용하는사람들이많으며,다른호칭

    을쓰면서도‘재일동포’를여전히함께쓰는연구자들이있다.많은연구자들이

    단지‘동포’나‘교포’만으로부족하며여기에국가나민족의함의가포함된그들

    의이름을불러주어야한다고생각한다.재일동포연구가많지않고1990년대

    후에집중적으로연구가이루어지기시작하면서호칭의분화역시이시기이후

    에찾아볼수있다.

    ① 한국정부

    한국정부가재일동포를호칭한기록은앞서일본정부에관한논의에서언급한

    바와같이한일양국이서명한1951년‘재일한교법적지위문제위원회’와1952

    년‘재일한인의국적및처우에관한한일협정안’,그리고1965년‘대한민국과일

    본국간의일본국에거주하는대한민국국민의법적지위와대우에관한협정’에

    서볼수있다.그런데이것으로한국정부의재일동포공식호칭이‘재일한교’에

    서‘재일한인’으로,그리고그다음에‘재일한국인’으로바뀌었다고단정할수는

    없다.1958년한국외무부에서발행한‘재일한인법적지위문제(에관한설명서)’

    를보면‘재일한교’,‘재일한인’,‘재일한국인’이함께사용되고있는것을확인할

    수있다.예를들면,이문서의제목은‘재일한인의법적지위문제……’이며목차

    에도제1장제1,2,3차회의의‘재일한인법적지위문제위원회토의개요,제2장예

    비교섭과재일한인법적지위문제’로되어있는데,본문에들어가면제1장제1차,

    제2차,제3차회의의‘재일한교법적지위문제위원회토의개요,제2장예비교섭

    과재일한교법적지위문제’로바뀌어있다.제1장에서제1차회담을설명하는논

    의에서“재일한교의법적지위에관한문제는……”(1쪽),“재일한교문제에”(2쪽)

    로시작하다가,4쪽부터는“재일한국인은대일평화조약발효로써……”,“재일한

    국인의국적은……”,“재일한국인의일본국적취득은”,“재일한국인의일본내영

    주권허가에관하여는……”등으로‘재일한국인’이등장하다가,다시20쪽부터는

  • 일본비평 7호276

    연구논단

    “재일한인에영주권을부여하되……”,“재일한인의생활보호조치……”,“재일한

    인의국적……”등‘재일한인’이사용된다.제2장제목은이미언급한대로‘재일

    한교’법적지위문제로쓰여졌는데(33쪽),곧바로이어지는내용설명에는‘재일

    한인’이다시사용된다.이어서1958~59년‘제4차한일회담:재일한인의법적지

    위위원회’,1961~64년까지‘제6차한일회담:재일한인의법적지위관계회의’가

    열렸다.그밖에1965년재일교민지원,1956~65년재일한국인유골봉환이라는

    외교문서가보인다.이상다소장황한논의로부터1965년이전한국정부는재일

    동포를호칭하는말로재일한교,재일한인,재일한국인을혼용했다는결론을이

    끌어낼수있다.

    한국정부는앞서언급한대로1965년‘대한민국과일본국간의일본국에거

    주하는대한민국국민의법적지위와대우에관한협정’에서는재일동포를‘일

    본국에거주하는대한민국국민’으로상세한호칭을사용했다.그러나1967년

    과1969년의‘재일한국인의법적지위협정의시행에관한양해사항확인문제’,

    1967년‘재일한국인의법적지위협정시행문제’,1966~67년의‘재일한국인의

    유골봉환’,1969년의‘재일한국인의법적지위향상을위한한일간법무장관회

    담’등과같은많은외교문서들이‘재일한국인’을사용하기시작했다.33)그러나

    다른한편1966,1969,1970년‘재일한인강제퇴거(송환)’,1969~1970년‘재일

    한인유골봉환’등과같이‘재일한인’을계속사용하며,1967년‘재일교민북한송

    환’,1970년‘재일교민김희로사건’,1969~70년‘재일교민현황’등과같이‘재

    일교민’을사용하는외교문서,1977~79년‘재일본교민김희로사건’등과같이

    ‘재일본교민’을사용한외교문서도볼수있다.1977~79년문서‘재일본한국인

    유골봉환’,‘재일본한국인강제퇴거’와같이‘재일본한국인’도등장한다.그밖에

    문교부를비롯한정부부처에서‘재일교포’,‘재일동포’를사용하는문서들도출

    판되었다.요컨대1965년한일협정이후‘재일한국인’사용경향이높아졌지만,

    여전히‘재일한인’이함께사용되었고,‘재일교민’,‘재일본교민’,‘재일교포’,‘재일

    33) 이하의 외교문서는 국회 전자도서관 DB(http://www.nanet.go.kr) 상에서 2010년까지 공개(1948~1979년 생산)된 마

    이크로자료의 문서목록을 통해 검색했다.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77

    동포’,‘재일본한국인’도사용되기시작했다.

    2000년이후소식을전하는현재외교통상부웹페이지에는‘재일한국인’과

    ‘재일동포’만이등장하여,차츰이두용어로정착한것을볼수있다.조선적재일

    동포에대해서는‘재일조선인’또는‘조총련교민’,‘조총련계재일교민’,‘조총련계

    재일본교민’,‘조총련계재일본동포’으로호칭했으며간혹‘재일교민’으로일반화

    시켜부르기도했다.

    ② 한국사회

    『조선일보』기사검색을통하여한국사회에서재일동포를가리키는용어로서재

    일동포,재일교포,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재일한국조선인,재일한인,재일코리

    조선일보 기사검색에 나타난 재일동포 호칭, 1949~2011

    조선일보 기사검색에 나타난 재일동포 호칭, 1949~2011(1959년 제외)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 조선인

    재일 조선 한국인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

    재일 교포19

    4919

    5119

    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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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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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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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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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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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

    3500

    3000

    250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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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

    500

    0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 조선인

    재일 조선 한국인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

    재일 교포

  • 일본비평 7호278

    연구논단

    안등의호칭등장빈도를추적해보았다.분석결과에따르면한국인들의인식에

    서재일동포를가리키는호칭은대부분재일동포와재일교포인것을알수있다.

    1949년이후여러용어사용빈도수를보여준에서,1959년수치가지

    나치게높아다른해의빈도차이가나타나지않아,1959년수치를1958년과같

    은수치로보정하여그린그림이이다.

    이도표들에서볼수있는대로1950년대초까지‘재일동포’만이사용되다

    가,1950년대이후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재일교포’는거의전기간가장사용

    빈도가높다.1970년대중반이후‘재일동포’가자주등장하기시작하여‘재일교

    포’와함께가장많이사용된용어가되었지만,여전히최근까지‘재일교포’가더

    많이사용되고있다.1990년대이후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등의호칭이나타나

    지만극소수이다.일본에서일반인과연구자모두가사용하는재일코리안,재일

    한국조선인등과같은호칭은한국신문에서거의나타나지않는다.한국에서일

    반인들사이에재일동포는‘재일동포’,‘재일교포’로서충분히지칭될수있는것

    이다.

    1959년에엄청난등장빈도를보인‘재일교포’기사는이해에시작된재일

    동포북송의영향으로보이며,이시기전후몇해의높은빈도역시이북송사건

    과관련된것이라고볼수있다.1965년한일협약,1972년7.4공동성명과1974

    년문세광사건등이재일교포기사를증가시킨계기를만들었다고보여지며,

    1991년에는일본외상의한국방문과조선적을포함한재일동포3세모두에게

    특별영주권을부여하게된한일각서의체결로인해기사내호칭등장빈도가늘

    어났다.1997년재외동포재단법과1999년재외동포법34)의설립은기사증대의

    34)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법의 제정 시에는 법의 적용대상에서 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국적

    을 가진 해외 영주권자’,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다가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국적을 포기한 사람과 그 직계비속’으로

    제한함으로써 문제가 있었다. 즉 제정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1948년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나가 외국 국적을 취득

    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는 많은 중국 동포와 러시아 지역 동포는 재외동포의 범위에 들지 않았다. 이 때문

    에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이 헌법소원을 내 헌법재판소가 2002년 이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그리하

    여 2004년 법의 개정 시 재외동포의 정의 규정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해외 영주권자’,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

    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하여,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재외동포의 범위에 포함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출처: 네이버 백과

    사전).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79

    또다른계기를만들었다.

    여기에서‘교포’와‘동포’용어의의미를짚어보자.1965년한국정부는‘재일

    한인의법적지위에관한협약’을일본과맺었는데,여기서재일교포란‘1945년

    8월15일이전부터일본에거주하는대한민국국민과그직계비속’을일컫는것

    이었다.한편1997년에제정된‘재외동포재단법’은재외동포를‘대한민국국민

    으로서외국에장기체류하거나영주권을취득한자와국적을불문하고한민족의

    혈통을지닌자로서외국에서거주・생활하는자’를말한다.이법들의정의에따

    르면교포는한국국민을의미하며동포는우리민족을강조하는용어라고해석

    된다.

    그러나실제로한국사회에서교포와동포가심각한의미차이를인식한채

    사용되었는지는알수없다.위키백과(wikipedia)에는‘한국계교민과관련된자

    료로서,대한민국의외교통상부에따르면재외동포의규모는……’이라고설명

    되어교포와동포를사실상하나의용어로사용하고있는것을볼수있다.또한

    1997년과한국정부가설립한재외동포재단이나재외동포법에서도‘동포’가정

    부가사용하는공식적인용어임을알수있는데도,여전히교포라는용어가신문

    기사에는더자주쓰이고있는것은두용어가별의미있는차이없이사용되고

    있다는것을보여준다.그럼에도불구하고1950년까지‘재일동포’만이사용되

    다가1950~60년대를통해서‘재일동포’는사라지고‘재일교포’만이사용되다가,

    1970년대다시‘재일동포’가사용되기시작하여이후‘재일교포’,‘재일동포’가

    함께사용되었다.이와같은명확한변화가어디에기인한것인가에대해서는설

    명을요한다.보다깊은분석이필요하겠지만,여기서는일단명칭사용의경향만

    을보여주는것으로그칠수밖에없다.35)

    35) 조선일보의 재일동포 관련 사설을 분석한 권혁태는 해방 직후 민족적 열의에서 사용되었던 재일동포라는 용어가

    1950년 한국전쟁 후 냉전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재일교포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동포가 다시

    사용된 것은 경제적 시점에서 회유·통합의 필요성이 한국사회에 대두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권혁태, 「‘재일조선

    인’과 한국사회 : 한국사회는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표상’해 왔는가」, 『역사비평』, 2007, 통권 78호).

  • 일본비평 7호280

    연구논단

    ③ 연구자

    한국사회일반인들이주로‘재일동포’,‘재일교포’를사용하는동안,재일동포에

    대한연구에서는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재일한국조선인,재일한인,재일코리

    안등일본에서사용되는모든호칭들이다각적으로사용되며증가해왔다.재일

    동포에관한신문기사의빈도가특정사회적계기에따라증감의큰폭을보이는

    것과는달리,그에대한연구는꾸준히증가해온것을볼수있다.일본에서연구

    자들이사용하는호칭이재일조선인과재일코리안으로집중되는경향을보이는

    데비해,한국연구자들의사용하는호칭은다양하다.학술정보연구서비스(RISS)

    의통합검색을통해한국연구자들의호칭사용에있어다음과같은몇가지경향

    을발견할수있다.

    첫째,신문기사에는거의등장하지않는‘재일조선인’이전시기를통하여가

    장많이사용되고있다.이것은우선일제시기연구자들이그시기재일동포를재

    일조선인으로칭하는경우가많기때문이라고보인다.36)앞서본대로재일동포

    자신들이이호칭을그들의차별경험을직시하는역사성있는개념이라고보고

    사용하는데,이점을존중하는학자들이‘재일조선인’을사용하고있는것으로보

    여진다.37)앞서본대로일본에서재일조선인은압도적으로많이사용되는용어

    이므로,일본연구자들또는일본에서공부한학자들이그영향을받은점도부인

    할수없을것이다.2003년재일동포에관한연구들을편집하여책을펴낸김광

    렬은여러호칭중에서“‘재일동포’도무난하기는하나……그들의특이한입장

    도반영하여객관성을띤총칭으로서‘재일조선인’을사용하는것이바람직하다”

    고책의서문에서말했다.38)

    둘째,사회일반에서와마찬가지로‘재일교포’가1960년대까지많이사용되

    다가1970년대이후‘재일동포’가함께사용되기시작했다.그러나여전히‘재일

    36) 김광렬, 「책을 펴내며」, 한일민족문제학회 엮음, 『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 삼인, 2003.

    37) 권혁태, 「‘재일조선인’과 한국사회 ― 한국사회는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표상’해 왔는가」; 한영혜, 「‘민족명’ 사용을 통해

    보는 재일조선인의 아이덴티티 : ‘민족’의 한계와 새로운 의미」, 『일본연구논총』 제27권, 2008 ; 권숙인, 「일본의 전통,

    교토의 섬유산업을 뒷받침해 온 재일조선인」, 『사회와 역사』 제91집, 2011.

    38) 김광렬, 「책을 펴내며」.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81

    교포’가일반적으로더많이사용되는신문기사와는달리,연구자들에게있어서

    ‘재일동포’는곧바로‘재일교포’를앞질러서1970년대중반이후현재까지‘재일

    조선인’과함께연구자들이가장많이사용하는호칭이되고있다.학문적엄밀성

    으로보아국적이라는한계를명확히하는‘교포’는국적이여러개로분화되어

    있는재일동포에게는적용하기적합하지않다는판단때문이라고볼수있다.

    여러호칭을사용하는학자들이‘재일동포’를함께사용하는경향도있다.39)

    강덕상(재일학자),김광렬,정인섭,김태기,윤건차,정진성,최영호등15명의재

    일동포에대한연구자들은1999년에재일학자박경식을추도하여출판한논문

    집의제목을『근현대한일관계와재일동포』(서울대학교출판부,1999)라고붙였

    다.각각의논문들안에서는재일한인,재일조선인등서로다른호칭들이사용되

    고있지만,재일동포는이를묶는기반으로서자리잡고있다는것을보여주는

    것이었다.앞서언급한김광렬편집의『재일조선인,그들은누구인가』(한일민족문

    제학회,삼인,2003)의책에각기한장의집필을담당했던김태기와최영호는다

    39) 김태기, 「분단의 갈등을 넘어 통일의 민족단체로」, 한일민족문제학회 엮음, 『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 삼인,

    2003 ; 최영호, 「재일동포는 선거권이 없다」, 한일민족문제학회 엮음, 『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 삼인, 2003 ; 이

    승우,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의 제한과 분쟁해결」, 『한국동북아논총』 제37집, 2005 ; 김재기, 「남북통일과정에서 재일

    동포의 대북한 경제협력」, 『한국동북아논총』 제34집, 2005 ; 정진성, 「민단-총련 관계의 변화 : 남북한 관계에 미칠 영

    향에 대한 탐색」, 『사회와역사』 제82집, 2009.

    한국 연구자들의 재일동포 호칭 사용

    출처 : 학술정보연구서비스(RISS) 통합검색

    1949

    1951

    1953

    1955

    1957

    1959

    1961

    1963

    1965

    1967

    1969

    1971

    1973

    1975

    1977

    1979

    1981

    1983

    1985

    1987

    1989

    1991

    1993

    1995

    1997

    1999

    2001

    2003

    2005

    2007

    2009

    2011

    90

    80

    70

    60

    50

    40

    30

    20

    10

    0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 조선인

    재일 조선 한국인

    재일 한인

    재일 코리안

    재일 동포

    재일 교포

  • 일본비평 7호282

    연구논단

    른연구에서재일한국인호칭을사용해왔던연구자들인데,이책에서재일조선

    인을사용하지않고재일동포라는호칭을사용했다.

    셋째,일본에서는거의사용되지않는재일한국인호칭이한국학자들에의해

    꾸준히사용되고있다.1965년한일협정이후부터연구에서사용이증가하기시

    작한‘재일한국인’은1980년대이광규,김상현등이분야의대표적저자들에의

    해서사용되며1990년중반이후2000년대중반까지의기간에는관련한국연구

    에서가장많이사용되었다.2000년대중반이후‘재일조선인’사용이지속되는

    가운데‘재일한국인’사용은감소되었으나,여전히최영호,김태기등대표적인

    재일동포연구자들은위호칭을지속적으로사용하고있다.40)

    넷째,‘재일한인’이상당히무게있게자리잡혀가고있다는것이다.재일한

    인호칭은1990년대들어자리를굳혔으며,2000년대에는비약적으로늘어나

    서,재일동포・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호칭들과함께재일동포를지칭하는대

    표적인용어로서사용되고있는것을볼수있다.재일동포관련법연구의대표

    적학자인정인섭은1996년에『재일교포의법적지위』라는대작을출판했는데,

    1999년에제목의“재일교포”라는호칭을“재일한인”으로바꾸었다.장인성,권

    숙인,정진성등재일동포관련연구자들도‘재일한인’을여러국적의재일동포를

    총칭하는호칭으로사용했다.41)이전에재일조선인호칭을사용하던김광렬은

    최근연구들에서‘재일한인’으로정착하고있다.그는2010년출판한저서에서

    “‘재일조선인’은해방후일본에서사용되고있는‘자이니치초센진’(在日朝鮮人)

    이란일본어를그대로한국어로직역한것이므로,일본어‘재일조선인’을한글사

    용권에서는‘재일한인’이라고번역표기해도무방하다”고다소중립적으로말했

    었지만,최근필자와의면담에서는재일한인이한국적,조선적,일본적,뉴커머재

    일동포를모두포괄하는가장적합한호칭이라는보다강한의견을피력했다.

    40) 이광규, 『재일한국인』, 일조각, 1983 ; 김상현, 『재일한국인』, 한민족, 1988 ; 최영호, 『재일한국인과 조국광복』, 글모인,

    1995.

    41) 장인성, 「총련계 재일한인의 민족정체성」, 『국제지역연구』 제12권 제4호, 2003 ; 권숙인, 「디아스포라 재일한인의 ‘귀

    환’ : 한국사회에서의 경험과 정체성」, 『국제지역연구』 17권 4호, 2008 ; 정진성, 「재일한인 뉴커머 형성과정과 집주지

    역의 특징」, 『사회와 역사』 제90집, 2011.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83

    마지막으로일본연구자들이‘재일조선인’과함께최근가장많이쓰고있는

    재일코리안이라는호칭사용도2000년대중반이후크게늘어나고있다.

    5. 결론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앞에서일본과한국에서재일동포를부르는다양한호칭들의변화경향을살펴

    보았다.그호칭들은역사성과현재성에있어서각기독특한의미를가지고있다.

    어떠한호칭은역사성에서,또다른호칭은현재성에서의미를가지면서도각기

    한국의역사와남북한분단등의조건으로인한한계를지니고있기도하다.이

    호칭들의의미를고찰하는것으로결론을대신하고자한다.

    우선,‘재일조선인’호칭에는몇가지의중요한역사적정당성과적합성이지

    지될수있다.첫째,이들이‘조선’에서일본으로입국했다는사실이다.그들이고

    향을등지고일본으로향할때,한반도는남한도북한도아닌‘조선’이었다는것

    이다.그들은일본에서일제시기뿐만아니라그후에도‘조센진’으로불리며차별

    당했다.그역사적현실을직시하고기억하기위하여그들은아직도일본국적을

    취득하지않고있다.그러므로‘재일조선인’은이와같은역사성이담지된호칭이

    다.둘째,일제시기와마찬가지로해방후그들은일본정부에의해‘조선’이라는

    국적을부여받았고,42)그후일본정부는‘조선’이국가가아니라조선반도라는지

    역을뜻한다고해명했다.43)재일동포는처음부터모두재일조선인이었으며,자신

    42) 해방 후 일본에서 1947년 5월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재일동포들은 모두 외국인으로서 등록하도록 되었으며 그때 국적

    란에는 ‘조선’으로 기재할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반도에는 남북한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으며, 일본정부

    도 이때 ‘조선’은 한반도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1950년 한국정부가 국적란에

    ‘한국’을 명기할 수 있도록 요청한 데 대한 답변에서도 재차 확인되었고, 1965년 10월 26일 일법무성견해(日法務省見

    解, 외국인등록증상의 조선적 중 ‘한국’ 또는 ‘조선’ 기재의 경우)를 통해서 다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즉 “외국인등록 시

    ‘조선’이라는 기재는 재일조선인의 국적 변경의 특수사정상 일본 영토였던 한반도에서 도일한 조선인을 가리키는 용어

    이며 어떠한 국적도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정인섭,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43) 현재 일본정부 기관인 ‘재단법인 입관협회’가 발행하는 『재류외국인통계』에서도 ‘한국조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만,

    이것은 단지 국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출신지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명기되어 있다. 예컨대, 목차에

    “국적(출신지)별 재류자격”, “국적(출신지)별 직업, 성별 외국인등록”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財團法人 入管協會,

    『平成5年版 在留外國人統計』).

  • 일본비평 7호284

    연구논단

    이국적을한국또는일본으로변경하지않는한‘조선’그대로이다.그러므로‘재

    일조선인’은역사적적합성도있다.셋째,더욱중요한점은한국국적을취득한

    사람들을포함한많은재일동포들이통일된조국으로서‘조선’을상정하며자신

    들을‘재일조선인’으로호칭한다는점이다.즉여기서‘조선’은현재의북한을의

    미하는것이아니라통일조국을의미한다는것이다.

    재일조선인호칭의이러한역사성은매우의미심장하지만,동시에일본에의

    해만들어진역사서술에의존한다는점에서심각한허점이있다.첫째,앞서언

    급한대로‘조선’은일본제국주의가근대화를지향하는대한제국의노력을무화

    시켜서부여한이름이기도하다.둘째,해방후일본정부가그들에게‘조선’이라

    는국적(지역)을부여했으나그후국적란의조선이한반도라는지역을가리킨다

    고한해명과,‘조선’은국명이아니라한반도라는통일조국이라고주장하는일본

    정부의입장을그대로받아들이는것이된다.셋째,북한과혼동되는것을감수해

    야하는것이다.44)마지막으로더욱중요한점은재일동포자신이재일조선인이

    라는일본통용의이름에서벗어나려고한여러노력들의의미와역사성을간과

    할수없다는점이다.

    다음으로‘재일한국인’호칭의역사적정당성과적합성을찾아보자.식민지

    ‘조선’을통치했던일본정부가‘조선’이국명이아니라는점을애써강조하고있

    는한편,일단의재일동포자신과한국의연구자들이‘재일조선인’을호칭할것을

    주장하는것은아이러니이기도하다.대한제국(한국)의역사적위상에대한또다

    른숙고를보자.고대로부터한반도를칭하는이름에는‘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

    [이씨]조선등)과‘한’(韓:마한,삼한,대한제국등)이모두등장한다.1392년부터

    500년간이씨조선왕조가지속되었다가이후1897년국호를조선에서대한제

    44) 역사적으로 일본사회에서 어떠한 용어가 사용되어 그 역사성이 인정된다 해도 그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면 한국의 지

    식인 사회는 그것을 바꿀 것을 제안해야 한다. 그것은 재일사회, 일본사회에도 역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는 그러한 실천의 예를 ‘일본군위안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종군위안부’로 불리우며 엄청난 고통을

    당했던 여성들을 지금도 일본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군위안부’로 부르고 있고, 한국에서도 무심하게 이 용어를 사

    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90년대 초에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종군’의 자발성의 의미를 지적하고 ‘일본군위안부’로

    호칭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이제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재일동포 및 일본인 연구자, 활동가에서까지 정

    착되고 있다.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85

    국으로개칭하며근대화를새롭게시도하고자했다.이러한노력을무력화하면

    서일본제국주의는칙령으로대한제국의국호를폐지하고국호에대신하는명칭

    으로서‘조선’이라고하는용어를사용할것을선언했다.일본정부는‘대한’이라

    는이름이나오는신문잡지를모두압수하고철저하게‘한’(韓)이라는말을없애

    고자했다.45)이러한이유로일본에의해빼앗긴한국의이름을되살리는것의정

    당성이지지될수있다.하지만‘재일한국인’의경우,재일동포전체가아닌한국

    적의동포로혼동되어조선적동포와귀화동포를빠트리는오해의여지가있다.

    그러나한국이일제합병전‘우리’의공식국명이며현재한국에서‘한국’이

    합법적인한반도의국가명칭이므로재일동포들을‘재일한국인’으로통칭하고,

    북한계또는총련계를앞에붙여‘북한계재일한국인’,‘총련계재일한국인’으로

    사용하면된다고보는학자도있다.보다정확하게,일제시기의상황을논의할때

    와해방후조선적사람들을가리킬때는‘재일조선인’으로,한국적동포는‘재일

    한국인’으로부르자는주장도제기된다.

    복잡한재일동포의구성을통합하고자일본에서1970년대에쓰기시작하여

    1990년대정점을이룬후차츰없어지고있는‘재일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

    인’,‘재일한조선인’호칭에대해서는한국과조선이라는두나라의명칭을병렬

    함으로써분단상황을반영할뿐만아니라그것을고착화시킬위험이있다는점

    을비판하며심리적거부감을나타내는사람이적지않다.물론이와같은호칭은

    한국에서는거의사용되지않았다.

    다른한편에서는명시적으로한국과조선이라는국가가같이드러나는방식

    을피하여‘재일’과‘재일코리안’호칭이사용되고있다.‘재일코리안’은외국어에

    의존한다는점에서더적절한호칭이라고보기는힘들어보인다.다소타협적인

    입장에서‘재일’의호칭이사용되기도하는데,이것은역사성이결여되어있고불

    완전하다는점이비판된다.

    또한국에서는재일동포에대하여보다포괄적인의미에서‘재일한인’을사

    45) 橘內尙子, 『在日コリアンのアイデンテイテイ : 在日文學から見えてくるもの』, 明治學院大学 論文, 2006, 16쪽.

  • 일본비평 7호286

    연구논단

    용하자는주장이있다.이는중국,미국등지에거주하는한국인을‘재외한인’으

    로통칭하는것과같은맥락이며,1950년대한국과일본양국이서명한외교문서

    에‘재일한인’이등장한적이있으므로역사적맥락이독특한재일동포들에있어

    서한국적동포만을지칭한다고받아들여질소지가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재일한인’은일본과재일동포들사이에서도‘재일한국

    인’,‘재일조선인’의갈등을피해서다소무난하게사용할수있는호칭으로선택

    되기도하는것같다.NHK에서한국어,조선어의분쟁을피해한글로프로그램

    명을정한것도그와같은맥락인것으로보인다.2005년에는일본에서재일동포

    들이개인의신조,소속단체,국적에구애받지않고객관적시점에서재일동포를

    총체적으로망라하는역사적사실을보여준다는취지로역사자료관이설립되었

    는데그명칭을놓고장기간고민하다가‘재일한인역사자료관’으로작명한것에

    서도그러한의도를볼수있다.이자료관은재정문제로결국민단이그책임을

    지고일본한국대사관내에설립되기는했지만,‘재일한인’호칭을고수한결과로

    써,실제로민단이나총련소속뿐만아니라중립적동포,귀화한동포,재일동포나

    한일관계사를연구하는일본인전문가등다양한층에서상당히의미있는자료

    를수집할수있었다고평가된다(『한겨레신문』,2010.1.6.).

    위에서논의한재일동포에관한여러호칭들은각기다른정치적입장과역

    사적시각으로부터그사용의근거를주장하고있지만,이주장들에서도몇가지

    공통적인점을발견할수있다.

    첫째,남북한을통합적으로보고자하는시각이다.재일동포를포괄하는호

    칭에대한입장의차이는남북한의어느한쪽으로호칭을통합할것인가에기인

    한것이아니었고,이들은공통적으로남북한이하나의민족이라는점에주목하

    고있었다.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이라는호칭에서조차,‘조선’은일제시기이들

    이출발한조국‘조선’을의미하며,‘한국’은일본제국주의에의해압살된대한제

    국을의미하는것이었다.

    둘째,재일동포를추상적인범주,또는이론적이거나당위적인존재로보는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287

    것이아니라구체적인역사적존재로보고자하는시각이다.호칭을통해재일동

    포들의역사적뿌리,일상생활에서의경험,구체적인욕구를파악하고표상하고

    자하는각기다른시도들은재일동포를일본에의해규정된수동적존재가아니

    라,일본사회에서자신들의정체성을인식하고만들어가고있는행위자로서주

    목하고있었다.

  • 국문초록

    325

    험에주목하는것은의의가있으리라생각된다.동일본대진재이후창조적관광부흥

    에성공할것인가?현재로서는오랫동안지속된자숙붐,장기적인관광정책의미흡,

    장기화되는후쿠시마원전사고로그전망이밝기만한것은아니다.그러나과거의시

    행착오에주목한다면,관광부흥의가능성은여전히열려있다고할수있다.

    주제어 :동일본대진재,재해관광,오쿠시리,한신,니가타,우스산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 | 정진성

    투고일자 : 2012년 5월 8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4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재일한인,재일동포,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재일한국조선인,재일조선한국인,재일,재일

    코리안(コリアン),재일한인,재일교포등‘재일-’이주자들을지칭하는어휘는다양하다.

    때로는국가,때로는민족혹은양자를표상하거나지우는방식으로만들어진호칭들의의

    미와혼란은어디에기인한것일까?

    본연구는재일동포등의호칭을둘러싼갈등의지점과쟁점들을살펴보고,이러한어휘등

    장과사용의역사적배경이무엇인지를당사자,정부,한국과일본의사회,관련연구자들

    이이들에게부여하는호칭들의의미,호칭등장의역사적배경,호칭을둘러싼긴장등을

    검토한다.

    이를통해,다양한호칭들속에서민족과국가가표상되는방식은식민지이후한반도를둘

    러싼정치적・역사적조건들과결부되어있다는점을드러내고자하였다.이러한정치적・

    역사적조건들은한국과일본사회가이들의존재를어떻게표상하는지뿐만아니라당사

    자들이자신의정체성을이해하고위치짓는자기해석의과정과도무관하지않다.따라서

    각각의호칭이담고있는현재적함의와인식은그역사성과함께고려되어야할것이다.

    주제어 :재일한국인,재일조선인,재일동포,재일한인,재일한국조선인,재일코리안

    세계화와 일본의 기업별조합 | 우종원

    투고일자 : 2012년 6월 18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25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세계화의진전속에일본사회의양극화가빠르게진행되고있다.이글은세계화에대한일

    본의기업별조합을대응을분석하고,기업별조합이양극화를저지하고못한이유와그런

    행동이조합자신에초래한귀결에대해문제를제기한다.

    세계화에대해일본기업은투자확대나이노베이션강화보다는코스트삭감을가속시키는

    방향으로대응했고,이는결과적으로사회의양극화를초래했다.기업별조합은스스로기

    업통치의한축을담당한때문에이런기업행동을용인하고,비정규직문제에대해서도적

  • 영문초록

    333

    Disaster Recovery and Creative Tourism Policy _ CHO Ara

    This paper began by questioning how tourism might contribute to the

    disaster recovery in Japan, and asking what the “creative” tourism of

    Machizukuri is in light of its emergence in the disaster’s aftermath. A

    disaster can be an opportunity for the existing society’s many-sided

    problems to be directly addressed and resolved. This paper examines

    the precedent natural disasters and their relief/recovery efforts after the

    1990s, and analyzes the first year of recovery since the 2011 Tohoku

    earthquake and tsunami (Great East Japan Earthquake), in order to look for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raised above. Japan has experienced many

    natural disasters, and have dealt with many trials and errors in its recovery

    efforts, and in doing so Japan has reformed its recovery scenario in every

    turn. Therefore, there is a good reason for understanding the Japanese

    experience in their disaster recoveries. Will Japan succeed in its creative

    tourism recovery after the earthquake? In the present moment, the long-

    lasting popularity of self-restraintism among the Japanese populace, along

    with the stagnant inadequacy of the government’s tourist policy, and the

    seemingly unending Fukushima nuclear accident do not brighten the future

    outlook. However, if the precedent disaster recovery efforts’ trials and

    errors are considered and how they have improved in their efforts every

    time, the possibility of Japan’s recovered tourism still remains open in the

    future.

    Keywords : Great East Japan Earthquake, disaster tourism, Okushiri, Hanshin,

    Niigata, Mount Usu.

    The Historical Consequence and Contemporary State of Phraseology Concerning Koreans in Japan _ JEONG Jin Seong

    Throughout modern history, Koreans residing in Japan have been called

    by names such as Japan-residing Hankookin, Japan-residing Josonin,

    Japan-residing Overseas Compatriot, Japan-residing Hanin, Japan-residing

    Hankook Josonin, Japan-residing Korean, etc. These names have been

    given either by the Korean-Japanese themselves, the Korean or Japanese

    people, as well as the governments of Korea and Japan. These names often

    stress their affiliation with state, nation, or sometimes both. However, in

  • 일본비평 7호334

    ABSTRACT

    some cases, the names, as given by the Korean-Japanese themselves, show

    an attempt to hide or delete such affiliations. The current paper examines

    the reasons behind such attempts and the phraseology of the terms that are

    used.

    The author investigates the points of conflicts and disputes in the

    phraseology in the context of their historical consequence and

    contemporary status. This work will show how various ways of phrasing

    the Korean-Japanese identity have been closely connected to the political

    and historical conditions on Korean Peninsula. Such political and historical

    conditions have decided how Korean and Japanese people and their

    respective governments have represented Koreans in Japan. These

    conditions, in turn, affected the perception of self-identity among the

    Koreans in Japan. Hence, the implications of current status of phraseology

    should also be duly considered in the context of its historical consequence.

    Keywords : Japan-residing Hankookin, Japan-residing Josonin, Japan-residing

    Overseas Compatriot, Japan-residing Hanin, Japan-residing Hankook

    Josonin, Japan-residing Korean

    Globalization and Enterprise Unions : The Paradox of ‘Employees as an Important Stakeholder’ _ WOO Jong Won

    In the age of globalization, the polarization made rapid progress in Japan.

    This paper examines how the Japanese enterprise unions dealt with the

    impact of globalization, why the unions could not stop the polarization,

    and what the result of union behaviors to the unions themselves would be.

    Japanese Companies chose their strategy which was not accelerating

    invest or innovation, but reinforcing cost-cutting, which brought about

    the decrease of regular workers, the increase of irregular workers, and the

    earnings differentials as a result. The enterprise unions that comprised with

    stockholders important stakeholders of corporations tolerated this kind of

    behavior. However, the cost cutting strategy and the following practices

    of employment/compensation management might lead to the erosion

    of workshops’ Kaisen-Power through putting an obstacle to smooth

    communication and taking workshops of time to carry out the Kaizen

    plans, as seen in the case study of A-Company.

    '재일동포'의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1. 문제제기 : '재일-'을 둘러싼 호칭들의 경합2. 재일동포 호칭 혼란의 쟁점과 배경3. 재일동포 자신의 호칭 사용 변화4. 재일동포에 대한 호칭 사용의 변화5. 결론 : 재일동포 호칭의 역사성과 현재성